산업은행 회장에 이재명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박상진 전 산은 준법감시인(63·사진)이 깜짝 발탁됐다. 산은 출범 이후 71년 만의 첫 내부 출신 회장이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보증기금 등 임기가 끝난 다른 금융 공공기관장의 인사는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마무리된 후로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 ‘고시반 친구’ 깜짝 발탁9일 금융위원회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신임 산은 회장에 박 전 준법감시인을 임명 제청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박 내정자는 산은에서 약 30년간 재직하며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법에 정통한 정책금융 전문가”라며 “산은의 당면 과제인 첨단전략산업 지원 등 정책금융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산은 회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박 내정자는 1962년생으로 전주고와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 대통령과 법학과 동기(82학번)다. 이 대통령과는 당시 고시반에서 함께 공부하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박 내정자는 고시를 포기하고 1990년 산은에 입사했다.
박 내정자는 산은 첫 내부 출신 회장이다. 산은 입행 이후 기아그룹·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 태스크포스(TF)팀, 법무실장, 준법감시인 등을 거쳤다. 2019~2022년 서부광역철도 부사장도 지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 재직 시절 온화한 성품으로 내부 직원들의 신임을 받았다”고 전했다.
박 내정자는 이날 임명 제청 직후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미래 산업 육성과 기존 산업 구조조정 등 두 가지 축이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취임 후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키워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산업의 지속성을 위해 구조조정도 중요한 문제”라며 “성공적인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위해 기업들과 묘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내정자는 “석유화학뿐 아니라 철강, 2차전지 등 들여다볼 산업이 많다”고도 했다.
산은은 새 정부 들어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이 강조되며 날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산은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기업을 지원하는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운용하는 주체다. 정부는 첨단전략산업기금에 일반 국민 공모 자금과 연기금, 금융회사 출자금 등으로 구성된 민간 자금 50조원을 연계해 총 10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구조조정에 나선 석유화학 업종 채권단을 이끄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 법대 동기가 ‘기업 구조대’ 역할을 하는 산은 회장에 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나머지 기관장 인선도 관심차기 산은 회장 임명 제청이 이뤄지면서 다른 금융 관련 공공기관장 인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위 산하 공공기관 7곳 중 기관장 임기가 끝났거나 연말까지 만료될 예정인 곳은 3곳이다.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과 최원목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각각 지난 1월과 지난달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 인사가 미뤄지면서 업무를 지속 중이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의 임기도 오는 11월 만료될 예정이다.
다만 일각에선 산은을 제외한 나머지 신임 기관장 임명이 뒤로 밀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금융위 산하 공공기관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당초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가 임명되면서 새 기관장 선임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으나, 금융당국 개편이 확정돼 다시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내년 1월 조직개편을 마친 뒤 재경부 장관이 임명 제청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럴 경우 금융 공공기관의 역할이 강조되는 가운데 리더십 공백 장기화 우려도 제기된다.
신연수/박재원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