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난달 굴착기 수출액이 작년 같은 달 대비 70% 가까이 급증했다. 금과 구리 등 광물 가격이 치솟자 신흥국을 중심으로 채굴 작업에 탄력이 붙은 영향이다.
9일 대체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한국의 8월 굴착기 수출액은 총 1억9487만달러(약 2700억원)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달(1억1649만달러)보다 67.3% 급증했다. 굴착기 수출 증가율은 지난 4월 플러스(17.4%)로 전환한 뒤 8월까지 4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 K굴착기 수출 급반등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중동 광산 개발업체의 대규모 주문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HD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아프리카·중동 직수출이 지난 2분기에 작년 같은 기간보다 78% 늘었다”고 말했다.
한경에이셀에 따르면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등이 제조하는 굴착기 수출금액은 지난 2분기 기준 6억1720만달러(약 8600억원)로 집계됐다. 2023년 3분기 후 일곱 분기 만의 최대 금액이다. 작년 2분기와 비교하면 22.4%, 전 분기보다는 26.6% 각각 늘어났다.
작년만 해도 크게 부진했던 굴착기 수출 회복의 핵심 배경은 아프리카 신흥국 중심의 귀금속과 광산 개발 증가다. HD현대건설기계는 7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신흥국의 자원 개발 및 인프라 확충 수요에 힘입어 건설기계 매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며 “수단 알제리 리비아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수주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HD현대건설기계는 3월 에티오피아 광산업체 두 곳에서 36t급 대형 굴착기 100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아프리카 2위 인구 대국(1억3500만 명)인 에티오피아는 쿠르무크 외에도 ‘세겔레’와 ‘툴루 카피’ 등 대형 금광 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가동 중이다.
매출 8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굴착기 제조업체들의 실적도 개선 흐름을 탔다. HD현대건설기계 매출은 지난 2분기 9677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3.4% 늘었다. 일회성 비용을 반영하지 않은 영업이익은 613억원으로 5% 증가했다.
아프리카·중동에서 올린 매출이 작년 2분기 대비 78% 뛰어 최대 시장인 북미·유럽(1%) 부진을 만회했다. 계열사인 HD현대인프라코어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각각 6.9%, 29.8% 증가했다. ◇ 광산 개발 붐 지속 전망시장조사업체들은 굴착기 수출 실적을 탄탄하게 뒷받침해 온 ‘신흥국 광산 개발 붐’이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작년 금 채굴량은 전년 대비 1% 늘어난 3661t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금값도 연일 급등세다. 금 선물(12월분) 가격은 전날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트로이온스(31.1g, 약 8.1돈)당 3677.40달러에 거래돼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금값이 치솟자 가나, 세네갈 등지에선 굴착기를 동원한 불법 채굴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호주에선 버려진 금광의 재가동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AI) 서비스 개발을 위한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증가와 각국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산업용 원자재를 확보하려는 광산 투자도 늘고 있다. 가장 공격적으로 해외 광산 투자에 나서는 곳은 중국이다. 머저마켓에 따르면 중국이 해외 광산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사례는 작년에만 10건에 달했다. 2022년 5건, 2023년 8건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희토류와 리튬 등 미래 산업 원자재 확보를 위해 미국과 ‘총성 없는 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력 인프라 핵심 소재인 구리의 확보도 각국 정부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구리 선물 가격은 미국이 수입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7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제구리연구그룹(ICSG)에 따르면 올해 채굴량은 콩고와 몽골, 러시아의 증산 및 새 광산 가동으로 2.3% 늘어 2350만t을 기록할 전망이다. 역시 사상 최대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