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공공기관 통폐합 주문했는데…기준도 공개 않는 기재부 [관가 포커스]

입력 2025-09-09 14:23
수정 2025-09-09 14:31


"기타 공공기관을 지정하는 기준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업종과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재량행위로 둔다."

한국전력과 코레일 등 331개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담당자의 답변이다. 기타 공공기관 지정 기준을 묻는 질문에 업종과 상황에 따라 다른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재량껏 판단한다고 했다.

해마다 경영평가를 받기 위해 기재부를 찾아야 하는 공공기관들이 "왜 지정됐는지, 지정되지 않았는지조차 설명하지 않을 정도로 기준이 불투명하다"라고 불만스러워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감시를 받는 공공기관들의 근거 없는 불평이 아니다. 지난 8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최병권 수석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공공기관 지정 요건의 구체적인 기준이나 사유를 공개하고 있지 않고, 공공기관 지정에 있어 기획재정부의 재량이 많아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이) 너무 많아서 숫자를 못 세겠다.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라"고 주문하면서 공공기관 지정 기준은 기관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됐다. 대통령이 직접 통폐합을 지시한 만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이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공운법은 규모가 크고 정부 의존도가 높은 공공기관을 공기업과 준정부기관(88개)으로, 나머지 공공기관은 기타 공공기관(243개)으로 분류한다.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는 공공기관은 공직유관기관이 된다. 공운법 상 공공기관을 뺀 공직유관기관은 올해 1196개에 달한다.

기타 공공기관과 공직유관기관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기타 공공기관은 공운법의 적용을 받아 실적과 정원, 직원 평균급여 등 경영활동을 상세하게 공시해야 한다.

공직유관기관은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다. 각 정부 부처들이 필요에 따라 설립하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기재부도 공직유관기관의 정확한 숫자와 기관장 임명 절차, 정원과 평균 연봉 등을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한국경제신문이 9일부터 '무한 증식하는 공공기관' 기획 시리즈를 통해 공직유관기관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지적하는 이유다.

기타 공공기관 지정 여부가 곧 살생부일 가능성이 커졌는데 기타 공공기관이냐 공직유관기관이냐를 나누는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재량에 따라 판단한다니 "기재부 입맛대로 공공기관에 넣었다 뺐다 한다"라는 불만이 커지는 것이다.

지난 7일 공개된 정부 조직 개편안에 따라 공운법 최고 의결기구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는 기획재정부 소속 기관으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 공공정책국은 공운위 사무국으로 공공기관 관리 기능이 확대될 전망이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공공기관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전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수 회복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 연말까지 공공기관 투자를 약 7조원 추가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정부의 성장전략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부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 성장을 위해 제시한 혁신 아이템별로 추진단을 구성해 전방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공공정책국의 권한과 기능도 강화하는데 공공기관을 지정하는 기준조차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현재의 행보대로라면 기재부가 '갑 중의 갑', '부처 위의 부처'라는 이미지를 벗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