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강국' 꿈꾸는 한국, 네트워크 인프라 혁신 서둘러야

입력 2025-09-08 15:51
수정 2025-09-08 15:52

최근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강국’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AI를 행정과 산업 전반의 혁신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의료, 제조, 금융, 국방, 공공서비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와 클라우드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지금 정부가 이 흐름을 주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1990년대 말 국가 주도로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며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한 성공 경험이 있는 만큼 이재명 정부의 ‘AI 프로젝트’가 어떤 변화를 이끌지 국내외의 관심이 쏠린다.

‘AI 강국’이 현실이 되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인 네트워크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AI 서비스는 고속·저지연·고신뢰 통신망 없이는 구현 자체가 어려워서다. 결국 AI 시대의 실질적인 진입 시점은 미래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견고한 네트워크의 구축 여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5G 단독모드(SA)의 본격적인 도입이다. 지금 대부분의 5G 네트워크는 4G 코어망을 기반으로 한 비단독(NSA) 방식이다. 인터넷 접속이나 영상 스트리밍에는 무리가 없지만, 원격 로봇 수술이나 긴급 대응 시스템처럼 수 밀리초의 지연이 치명적인 분야에는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이처럼 고난도 서비스에 대응하려면, 초저지연성과 고신뢰성을 갖춘 5G SA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5G SA의 강점은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능에 있다. 하나의 네트워크를 가상으로 분할해 각 산업과 서비스의 요구에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용 사례에 맞춤형 연결성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의 도심 주행이나 스마트팩토리 로봇의 정밀 제어처럼 지연에 민감한 환경에서도 안정적 통신이 가능하다. 5G SA는 서비스 수준 협약(SLA)에 따라 통신망을 가상 분리하고 각 서비스에 필요한 성능을 보장한다.

이러한 네트워크 슬라이싱의 효과는 기업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에게도 유효하다. 사용자마다 요구되는 네트워크 성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상 콘텐츠 시청자, 초저지연 환경이 필요한 게이머, 고해상도 콘텐츠를 자주 업로드하는 인플루언서는 동일한 통신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5G 슬라이싱은 이용자가 자신의 사용 패턴에 최적화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

AI의 본격 확산과 함께 ‘올웨이즈 온(Always-on)’ 확장현실(XR) 안경처럼 주변 환경을 실시간 분석해 정보를 제공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서비스는 속도·용량·지연시간 등 특정 슬라이스에서 보장된 정교한 네트워크 성능을 필요로 한다. 다만 오늘날의 ‘최선의 노력(Best-Effort)’ 방식의 범용 연결만으로는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즉 슬라이싱 없는 네트워크는 모든 이용자에게 똑같은 기차를 타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빠르고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최적은 아니다. 반면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필요에 따라 자동차, 자전거, 비행기, 보트 등 가장 적합한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이는 AI 시대의 ‘맞춤형 연결성’을 구현하는 핵심 기반이다.

동시에 통신망은 단순한 연결 수단을 넘어 국가의 전략 자산으로 인식돼야 한다. 항만, 철도, 전력망처럼 통신 인프라도 국가 핵심 기반시설이다. AI·클라우드 기반 산업, 금융, 국방, 제조의 근간은 모두 ‘연결성’에 있다. 이 연결이 끊기면 국가 기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안정적인 통신망은 국가 경쟁력의 토대가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5G를 상용화한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조기 구축의 이면에는 일부 기지국과 LTE 인프라가 이미 노후화라는 과제가 있다. AI와 6G 시대를 대비하려면 기존 네트워크를 현대화해야 한다. 동시에 AI 기반의 지능형 장비로 업그레이드해 서비스 품질과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설비 교체를 넘어, 차세대 네트워크의 토대를 강화하는 전략적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네트워크를 AI 강국 도약의 핵심 키워드로 강조하고 있다. AI 기반 네트워크 혁신이 향후 국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이러한 방향에 맞춰 6G 상용화 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5G SA의 조기 도입과 안정적 정착을 위해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하며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