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금융당국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8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정부와 여당은 금융 정책·감독 기능을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등 4개 기관으로 쪼개기로 했다. 이에 금융위는 부처 조직 자체가 해체돼 재정경제부와 금감위로 흡수된다. 금융위 소속 공무원은 일부만 서울에 남고 대다수는 세종 이전을 앞두게 됐다. 금감원 직원 다수도 금감원에서 분리·신설될 금소원으로 소속을 옮겨야 할 처지다. 금감원은 공공기관 지정이라는 족쇄까지 차게 됐다.행시 출신들도 "못 버틴다"…금융위 직원들 '집단패닉'
7일 고위 당정에서 확정된 조직개편안에는 금융위를 18년 만에 해체하고 금융위의 기둥 격이었던 금융정책(금융정보분석원 포함) 업무를 재정경제부로 이관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위원회'로 명칭을 바꾼 뒤 감독 기능에 집중한다. 금감위 산하에 기존의 '금감원'과 '금소원'을 두게 된다. 금감원과 금소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고위당정협의회를 끝낸 뒤 가진 결과 브리핑에서 "금융위의 국내 금융 기능을 재경부로 이관하는 건 국내 금융과 국제 금융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금융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오는 25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등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금융위는 갖고 있던 국내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각각 재경부와 금감원에 내주고 간판을 내리게 된다.
갑작스러운 조직 해체 통보에 직원들은 침통한 분위기다. 최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이찬진 금감원장과 함께 임명되면서 금융위 내부에선 '설마 해체하겠느냐'는 기대가 번진 상황이었지만 개편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위 성과를 연달아 공개 칭찬한 직후라 허탈감이 더 크다는 게 직원들 반응이다.
무엇보다도 재경부 편입으로 대다수 인력이 세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다. 직원들 사이에선 "사실상 좌천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그간 기재부와 공정위 등 여러 쟁쟁한 부처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유지했다. 지난해 5급 공채 합격자 중 수석과 차석 모두 금융위를 택했는데, '서울청사'란 이점이 컸다.
이제는 서울 근무 이점이 사라지면서 젊은 인재들의 이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위의 한 사무관은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고 시작한 개편에서 금융당국만 손해를 봤다. 예산권과 장·차관 자리는 새로 생기고, 금융정책은 재경부로 넘어갔다"며 "내부 분위기는 허탈감 그 자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사무관은 "조직 개편과 관련해 내부 의견수렴 절차는 단 한 차례도 없었고, 발표 일정이 확정된 지난주에도 '외부에 말하지 말라'는 내부 함구령만 떨어졌다”며 "희망을 갖고 묵묵히 할 일에 집중했는데 결과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30~40대 초반 직원들은 현실적으로 (세종으로) 출퇴근하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지가 걱정"이라며 "고시 2년차 이하 직원들은 이미 로스쿨을 가거나 타 부처로 이동하겠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에 남을 금감위의 규모가 관건이다. 재경부에 보험제도과가, 금감위에 보험감독과가 생기는 식으로 금감위에도 업권별로 과(부서)를 두기로 하면 재경부로 이전하는 금융위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금감위에 업무 지원조직 성격으로 금융위 인력을 최소한만 남겨둘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재경부로의 이전이 확실시된 관련 부서 직원 입장에서는 괜히 적은 인원으로 편입돼 '소수파'가 되는 것보다 대규모로 함께 옮겨가는 편이 내부 입지를 지키는 데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리는 분위기다.
정책적 효율성과 책임성도 흔들릴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 한 사무관은 “법·시행령은 재경부가 맡고 감독규정은 금감위가 담당하는 식으로 쪼개질 경우 제도는 하나의 체계로 이어지는데도 기관이 둘로 나뉘어 사실상 대부분 업무를 같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가 생기면 '이건 시행령 사항이니 재경부 책임', '이건 감독규정이니 금감위 책임'이라며 책임이 분산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위 한 서기관도 "이원화 체제 땐 지금처럼 정책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금소원 이적에 공공기관 지정까지" 금감원도 망연자실
금감원 직원들도 침통한 분위기다.
우선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가 금소원으로 분리·독립하면, 당장 일부 인원의 소속이 바뀐다. 기존에도 '민원'을 다루는 금융소비자 부서는 금감원 내 대표적 기피부서로 꼽혔다. 신설 기관으로 전보된 직원들은 사실상 관련 업무를 계속 맡아야 하는 만큼, 인사 불만과 사기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무자본 특수법인' 민간회사에서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는 점도 큰 부담이다. 예산·인사를 통한 정부 통제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진다.
금감원 한 팀장은 "공공기관 지정이 유력해지고 기재부-금감위 간 인사 교류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금융감독 기능이 사실상 경제정책에 종속되는 셈"이라며 "한국은행 통화정책이 기재부 경제정책에 종속되는 것과 비슷하다. 금융감독의 중립성·독립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온 금감원의 존립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보원 분리에 대해선 "업무 관할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혼선이 불가피하다. 해외 실패 사례와 학계 지적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수년 내에 다시 통합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 한 30대 직원은 "(금융사와 유관기관 대비) 적은 급여에도 금감원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입사했는데 실망이 크다"며 "만일 금소원에 배치된다면 퇴사 준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선 이복현 전 원장 시절 불거진 '월권·권한 남용' 논란이 이번 논의의 배경 중 하나라는 해석도 있다. 금감원 한 팀장은 "민간 조직인 금감원에 대해 공무원들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듯하다"며 "조직의 문제였다기보단 원장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인데, 이를 개선하려면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방향이었어야 한다. 경제정책 중심 관리 체계로 만든 건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장 이제부턴 신설 금소원과 금감원 사이의 업무 분장과 인사 교류가 쟁점이다. 금감원 한 팀장은 "소보원에 금감원과 대등한 감독권을 줄지, 독립적 검사권을 받지 않고 소비자 민원만 담당할지가 규정되면 옮길 부서 범위가 추려질 것"이라며 "금소원 범위에 민원뿐 아니라 영업행위와 감독·검사가 포함될 수 있어 거의 모든 직원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내부 반목과 갈등이 커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전날 조직개편 발표 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금감원 직원 게시판에는 불만 글이 쏟아지고 있다. 직원들은 "공공기관 지정까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최악의 결론" "파업해야 한다" "내일부터 이직할 곳 찾는다" 등 거친 반응을 보였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날 직원에게 보낸 내부 공지에서 "경영진 모두가 감독체게 개편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에 매우 안타깝다"며 "앞으로 국회 논의와 유관기관 협의 과정에 적극 임해 금감원과 금소원 기능, 역할 등 세부 사항을 꼼꼼히 챙기겠다"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