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석 칼럼] 국가 R&D와 사교육의 공통점

입력 2025-09-08 17:41
수정 2025-09-09 00:10
한국에서 사교육은 가정 경제를 힘들게 하는 주범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자녀 한 명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월평균 59만2000원이며 매년 7~8%씩 씀씀이가 늘고 있다. 자녀가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사교육 집착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사교육의 가성비다. 돈만 많이 쓰고 성적은 오르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같은 금융투자 전문가들이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을 사주라”고 하는 이유다.

정부 지출 중에도 사교육비와 비슷한 항목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구개발(R&D) 예산이다. 다른 나라와의 기술 경쟁 때문에 늘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국가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한국의 R&D 체계에 대해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연구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고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액 비중은 4.96%(2023년)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지만, 결과물이 기업으로 이전돼 부가가치를 높인 사례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한국 R&D의 효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연구 인력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데다, 연구기관 간 협업도 지지부진하다. 계량적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관행도 문제다. 국내 연구자에게 중요한 것은 논문과 특허의 수다. 수치로 드러나는 결과물이 없으면 예산이 줄거나 프로젝트가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 실패 확률이 작은 연구가 대세가 되고, 혁신적인 도전은 뒷순위로 밀려난다.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원으로 편성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올해와 비교하면 19.3%나 늘어난다. 구조적인 변화도 적잖다.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과 기초과학 분야 예산이 대폭 증액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폐지됐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예산 확보를 위한 외부 과제 수주에 힘을 빼지 않고, 혁신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국가 간 기술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변화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보다 R&D의 산업화 고민이 더 필요하다. 2023년 기준으로 정부 출연 연구소의 기술이 기업으로 이전된 사례는 1만1791건인데, 이 중 제품 생산에 활용돼 매출을 얻은 사례는 19.2%인 2265건에 불과하다. 출연연의 인력과 예산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자신이 설립한 AI 기업 xAI에서 연구원(researcher)이라는 직함을 없앴다. ‘xAI에서 연구원과 엔지니어를 찾고 있다’는 구인 문구를 본 머스크는 “연구원은 얄팍하게 포장된 허세 가득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연구원과 엔지니어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연구원은 실험실에서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는 인력이다. 엔지니어로 불리려면 기술 상용화와 산학 협력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빅테크가 책정한 엔지니어 연봉은 연구원보다 세 배 이상 많다.

국내 연구기관들도 머스크 CEO의 주장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기업을 찾아다니며 신기술 도입을 설득하고,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해야 R&D 성과물이 기업으로 유입돼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기업의 생리를 잘 아는 인재를 더 뽑고, 성과를 낸 엔지니어에겐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산 증액은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