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산업 태동의 주역.”
8일 50주기를 맞은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에 대한 철강업계의 평가다. 장 창업주는 1954년 국내 최초 철강사 동국제강을 세운 뒤 후판 최초 생산(1971년) 등 한국 산업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손자인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철강보국’의 큰 뜻을 실현하라는 창업주의 유산은 우리가 꼭 되새겨야 할 금과옥조”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은 전 재산을 불교계에 기부하고 입적한 그의 뜻을 기려 대한불교진흥원의 포교당인 서울 마포 다보원에서 열렸다.
장 창업주는 1899년 부산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사업을 시작한 건 그가 30세이던 1929년이다. 농사를 짓는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 밑천을 모은 그는 큰 활을 쏘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대궁(大弓)양행을 세웠다. 쌀가마니를 수집해 판매하는 사업을 본격화했다. 1935년에는 사업을 확장해 남선물산을 세우고 가마니 판매 외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정미소, 창고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철과의 인연은 1949년 시작된다. 한 재일동포로부터 철사와 못을 제조하던 회사를 인수해 조선선재를 설립했다. 조선선재는 6·25전쟁 후 전후 복구사업에 필수적인 철사, 못 등을 생산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장 창업주는 축적한 자산을 기반으로 서울 당산동에 있던 한국특수제강을 인수해 1954년 동국제강을 세웠다. 대한민국 최초 민간 자본으로 쇳물을 만드는 철강사의 탄생이다. 사명 동국에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란 뜻을 담았다.
동국제강이 부산 용호동에 세운 제강소는 한국 철강산업 발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동국제강은 1963년 용호동 일대 69만㎡ 규모 갯벌을 매립해 부산 제강소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 동국제강이 창립된 지 10년 만이다.
동국제강 부산 제강소가 한국 철강산업사에서 늘 언급되는 건 수많은 ‘최초’ 기록을 세우며 철강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부산 제강소는 국내 최초 고로 가동(1965년), 전기로 가동(1966년), 후판 생산(1971년) 등의 기록을 잇달아 세웠다. 철강산업이 ‘산업의 쌀’로 불리던 시절, 동국제강의 도전은 한국 철강사에 빠질 수 없는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세주 회장은 추모사에서 “고(故) 장경호 회장은 ‘동국제강은 나도 너희들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다”며 “이 나라의 부강과 민족을 위해 세웠으니 이 나라의 것이요, 회사에 일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존립할 수 없었으니 동국제강은 그들의 것임을 명심하라는 가르침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장 창업주는 불교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사재 30억원(현재 가치 약 5000억원 추산)을 출연해 대한불교진흥원을 설립했다. 불교계는 장 창업주를 “현대 불교 대중화의 토대를 놓은 인물”로 평가한다.
장 창업주는 1975년 9월 9일 별세했다. 그의 묘비에는 법명인 ‘대원거사’가 새겨져 있다. 동국제강그룹은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되새기고, 산업사와 불교사적 유산을 함께 조명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동국제강그룹은 이날 공식 유튜브 채널에 장 창업주 50주기 추모 영상인 ‘기업을 세우고, 마음을 남기다’를 공개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