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을' ASML, 佛 미스트랄 AI 최대주주로

입력 2025-09-08 16:42
수정 2025-09-15 16:16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이 프랑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미스트랄)의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업계는 이번 투자를 단순한 재무 행위로 보지 않고 반도체와 AI를 연결해 유럽식 기술 주권 모델을 가속화하려는 전략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빅테크의 인수 시도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미스트랄의 기술을 활용해 중국이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성능을 더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 반도체와 연결한 AI 생태계 조성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ASML이 미스트랄의 상장 전 마지막 투자 유치 단계인 시리즈C 라운드에서 13억유로(약 2조119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전체 투자 규모는 17억유로(약 2조7710억원)에 달한다. 이번 라운드를 통해 미스트랄은 유럽 AI 기업 중 가장 높은 100억유로(약 16조2815억원)가량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ASML은 이사회 의석을 확보해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미스트랄은 딥마인드 출신 아르튀르 멍슈와 메타 출신 연구원 티모테 라크루아, 기욤 랑플이 2023년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생성형 AI 기술을 기반으로 오픈AI, 구글 등 미국 빅테크와 경쟁 중이다. 지난해에는 엔비디아로부터 시리즈B 단계에서 투자를 유치해 6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하는 기업이다. 주요 고객사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인텔 등이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EUV 노광 장비 ‘High-NA EUV’의 경우 대당 가격이 최소 5000억원을 웃돈다. 최근 SK하이닉스가 메모리업계 최초로 이 장비를 경기 이천 M16팹(Fab)에 반입했다.

ASML의 투자는 유럽 기술 주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반도체 기업들이 주로 장비·소재·공정 등 공급망 투자에 집중했다면 ASML은 기술 주권을 고려한 ‘AI 지분 투자’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강조하는 독자적 AI 생태계 구축과도 맞물린다. EU는 미국과 중국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 AI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세계 유일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 장비업계의 강자가 AI 신흥 강호와 손을 잡음으로써 AI와 반도체 간 시너지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ASML은 자사 장비에 AI 기술을 접목해 생산 효율과 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하고, 미스트랄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유럽 내 기술 리더십 결집 계기”ASML은 지분 투자로 테크 생태계를 확장하는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 크리스토퍼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SML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생태계’”라고 말했다. 생태계 구축을 위해 ASML이 투자한 대표 사례로 TSMC가 꼽힌다.

1987년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세계 최초로 파운드리 기업을 세우기 위해 2억2000만달러에 달하는 자본을 유치하려고 했다. 이 금액의 절반을 대만 정부가 댔지만 상당한 외부 투자가 필요했다.

당시 모리스 창은 미국으로 건너가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를 접촉했지만 매번 투자를 거부당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네덜란드 기업 필립스에서 5800만달러(28% 지분율) 투자를 얻어냈다. 이는 필립스에서 분사한 ASML과의 관계가 시작된 계기가 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ASML과 미스트랄의 협력은 유럽 내 기술 리더십을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