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08일 11:1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수민 UCK파트너스 대표는 2014년 첫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할 때부터 가정간편식(HMR) 산업을 주목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K푸드 열풍이 불던 시절도 아니지만 컨설턴트 출신인 김 대표는 HMR에서 미래를 봤다.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우선 HMR은 경기 민감성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식품 기술이 발전할수록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무엇보다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스토랑 등을 통해 확산되던 한국의 식문화가 해외에 알려진 이후엔 K푸드의 산업화가 이뤄되고, 그때의 주인공은 HMR일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었다. 김 대표는 곧 이같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신선화 파트너와 함께 전국을 돌며 국내 중소식품 기업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김 대표는 "규모를 가리지 않고 냉동식품 제조업체 중엔 만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회상했다.
'도화지'와 '물감'의 만남이때 만났던 회사 중 하나가 엄지식품이다. 엄지식품은 겉보기엔 냉동식품을 제조하는 평범한 중소 식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였다. 속을 들여다보면 달랐다. 대부분의 중소 식품 제조사가 한 개의 제품군에 의존하는 반면 엄지식품은 냉동식품군 '탑2'로 불리는 만두와 볶음밥 제조에 뛰어난 능력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재무적으로 튼튼했고, OEM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한 점도 차별화 포인트였다.
다만 UCK가 엄지식품을 처음 찾아간 2016년만 해도 창업주는 매각 의사가 없었다. 6년의 시간이 지난 2021년에야 공장 추가 건립 등으로 성장을 위한 추가 투자가 필요했던 창업주가 UCK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엄지식품을 단순 냉동식품 OEM 회사가 아닌 지금까지 한국에 없던 HMR 회사로 키우겠다는 UCK의 비전에 창업주는 결국 UCK를 파트너로 선정하고 경영권을 넘겼다.
수지스퀴진도 김 대표가 식품기업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닐 때 만난 회사다. 이 회사는 엄지식품과는 정반대의 기업이었다. 제조시설이 없는 대신 제품 개발 역량이 뛰어났다. 디자인과 마케팅, 영업에도 강점이 있었다. 제품력을 기반으로 코스트코에 입점해 상품성도 인정받았다. 한식을 세계화하겠다는 비전도 김 대표가 추구하는 목표와 맞았다.
하지만 수지스퀴진 투자를 처음 검토했던 2016년엔 회사가 너무 영세했고, 흑자를 내지도 못했다. PEF가 투자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한 김 대표는 벤처캐피탈(VC)의 투자를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투자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김 대표는 수지스퀴진과 연을 이어가며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조언을 건넸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지난 뒤 UCK는 수지스퀴진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김 대표는 엄지식품과 수지스퀴진 인수를 추진하는 단계부터 두 회사의 합병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UCK 내부에선 엄지식품을 '흰색 도화지', 수지스퀴진을 '화려한 물감'이라고 불렀다. 제조 경쟁력을 가진 엄지식품이 밑바탕이 되고, 엄지식품과 제품 개발과 마케팅 및 영업 역량이 뛰어난 수지스퀴진이 만나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날 것으로 봤다. 둘을 합치면 '1+1=2'가 아닌 '1+1=∞(무한대)'라는 새로운 공식이 성립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었다.
제조부터 해외영업까지 벨류체인 구축밸류업을 위한 볼트온 전략을 인수 전부터 전략적으로 세운 UCK는 지난 5월 두 회사의 합병 절차를 마무리했다. 수지스퀴진을 엄지식품의 사업부로 편입했다. 수지스퀴진과의 합병으로 다시 태어난 엄지식품은 국내 식품업계에서 유일무이한 강소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HMR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만두와 볶음밥, 육가공 제품군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식품 대기업을 제외하곤 엄지식품뿐이다. 경기를 많이 타지 않는 냉동식품 사업에서 폭넓은 주요 제품군을 확보하며 변동성이 더 줄었다. 제조부터 기획, 유통, 마케팅, 해외 영업까지 식품 제조 관련 전 밸류체인을 구축한 곳도 중소기업 중엔 엄지식품이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식품업계의 트렌드 변화 속도가 날로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엄지식품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업계에선 국내 식품 산업이 화장품 산업과 비슷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과거 전통 화장품 대기업이 주름잡던 국내 화장품 시장은 최근 들어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소셜미디어 마케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소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됐다. 식품 산업에서도 소비자의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브랜드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구축한 데다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엄지식품은 이런 산업 트렌드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UCK 인수 이후 지속적인 실적 개선을 이어온 엄지식품과 수지스퀴진은 합병 이후 더욱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원가율을 개선하고, 판매비 및 관리비를 효율화해 매출총이익과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크게 늘었다. 엄지식품과 수지스퀴진은 다른 밀키트 업체들과 달리 광고·마케팅에 비용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지 않아 수익성이 뛰어난 편이다. 2023년 159억원이었던 엄지식품의 매출총이익(수지스퀴진과 합병 기준)은 지난해 200억원을 돌파해 내년에는 385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EBITDA는 56억원에서 올해 120억원으로 두 배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회성 비용을 제거하고, 합병 시너지 등을 고려한 조정 EBITDA는 내년 2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UCK는 엄지식품의 다음 목표로 해외 시장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창구는 코스트코와 월마트 계열 회원제 창고형 대형마트 샘스클럽(Sam's Club)이다. 이미 엄지식품은 미국 내 50여개 샘스클럽 점포에 내년부터 냉동 만두와 볶음밥 등을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다. 최근 K푸드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엄지식품은 내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일본, 중국 등 해외 매출이 대폭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