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에 러시아산 원유 구매 중단을 촉구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대한 유럽의 책임을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후에도 평화 협상이 진전이 없는 데다 중국 전승절 행사 등에서 북·중·러 협력 구도가 강화되자 미국이 러시아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서 1년 동안 11억유로(약 1조7862억원) 규모의 원유 판매 이익을 얻었다”며 “유럽은 전쟁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을 막기 위해 중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의지의 연합’ 화상 회의에서 나왔다. 이 단체는 전쟁 종식과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을 위해 결성된 국제 연합체다. 이날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이 자신의 전쟁이 아니며, 유럽 국가들도 나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러시아를 제재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방송은 행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 협상에 진척이 없자 점점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주선하는 데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러시아산 석유 구입 중단이 러시아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유럽 국가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유를 계속 수입하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를 말한 것인지, 인도 등 제3국이 정제된 러시아산 원유 기반 연료를 수입하는 점을 지목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부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모순적이라고 비판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에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전쟁과 관련된 외교적 움직임 중 진전을 보인 것은 유럽 동맹국들이 주도하는 안전 보장 논의뿐”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유럽은 이날 의지의 연합 회의를 열고 종전 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에 관해 논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 서방 26개국이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파병 또는 육해공 주둔 유지, 무기 지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며칠 내 추가 안보 조치를 제시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군 강화 및 유럽군 배치와 더불어 안전 보장의 세 번째 요소는 ‘미국의 안전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