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할 일이 많은데 임기가 4년 9개월밖에 안 남았네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비공개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단과 만찬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실의 서면 브리핑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을 두고 대선 공약인 '대통령 4년 연임제'와의 연관성을 읽어내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대선에서 이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고 공약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잔여 임기에 대한 이 대통령의 언급이 대통령실 브리핑을 통해 굳이 공개된 점은 연말 예고된 대통령제 개헌 논의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이 대통령의 지론이자, 핵심 슬로건 중 하나가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힌트가 있다. '국민이 원한다면 좀 더 해도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실적을 바탕으로 강력한 국민의 지지를 추구하겠다는 걸로 해석이 된다. 결과에 따라 '제발 한 번 더 해줘' 같은 여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행 헌법이 존재하므로 임기 연장의 방식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 교수는 통화에서 "공식적으로 4년 연임제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었다"면서도 "임기가 아쉽다는 언급은 재출마가 불가능한 제도에 대한 인식으로도 볼 수 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현행 대한민국 대통령제는 헌법에 의해 5년 단임제로 규정돼 있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대통령 4년 연임제는 임기를 4년으로 줄이고, 첫 임기 직후 한 번에 한해서만 연임을 가능하게 한다. 종종 함께 거론되는 중임제는 연임제보다 넓은 형태로, 한 번 선출된 대통령이 차기, 차차기 등 언제든 다시 출마해 당선될 수 있다. 즉, 연임제에서는 차기 도전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정부·여당은 이 대통령 공약 이행 작업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먼저 이재명 정부의 인수위격이라 할 수 있는 국정기획위는 지난달 활동을 마치며 개헌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발표했다. 친이재명계 핵심인 김영진 의원은 지난달 라디오에서 "올해 안에 국회에서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 국민투표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를 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여야가 합의하는 헌법 개정의 1단계를 진행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놨다. 1단계 개헌안에는 연임제가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 대통령의 개헌 의지를 직접 전달하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우 의장은 지난달 라디오에서 "이 대통령과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개헌 의지에 관해서는 분명하다"고 전했다. 연임제에 대해서는 "4년 연임제는 중임을 연붙여서 한 번만 하자. 중임제를 더 엄격하게 하는 것"이라며 "연임제라고 하니 '장기 집권 아니냐'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회 의결, 국민투표 등 헌법 개정 절차를 거쳐 연임제로 바뀌더라도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다음 대선에 또 출마하는 건 헌법상 불가능하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직 대통령 등 권력자에게 헌법이 유리하게 개정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이 대통령의 연임제 공약 발표 직후 "푸틴 모델"이라며 장기 집권 시도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들은 이때 2회 재임 후 한 차례 불출마 후 다시 또 2회 재임하는 소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식 '연임제 징검다리 꼼수'와 같은 우려를 앞세웠다. 판사 출신인 나경원 의원은 "푸틴식 장기 집권 개헌에 국민은 속지 않는다. 중임은 단 한 번의 재선 기회만 허용하며 8년을 넘을 수 없지만, 연임은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혹세무민의 단어"라고 주장했다.
일부 법학자나 야권 일각에서는 추후 야당의 개헌 저지선이 무너진 국회를 앞세워 헌법 제128조 제2항을 사문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헌법적 안전장치마저 거대 의석으로 없앨 수 있지 않겠냐는 취지다. 다만 해당 조항의 개정은 가능하되, 소급 적용은 안 된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해당 조항을 둔 취지 자체가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원론적으로) 수정할 순 있지만, 개헌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의심의 눈초리가 거둬지지 않는 것은 이 대통령이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헌법 제128조 제2항에 대해 밝힌 입장 때문이다. 그는 당시 "헌법에 재임 중 대통령은 적용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데, 과거 국민이 현재 국민의 의사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어 이론적으로는 논란이 있다"며 "헌법 개정 당시 국민의 뜻이라면 그 개정된 헌법에 따르는 게 국민주권주의에 더 맞다"고 '국민의 뜻'을 언급했다. 아울러 "학계에서는 (소급) 적용이 없다고 하지만, 정치 도의상 (국민의 뜻을) 어떻게 쉽게 어기겠나. 저는 당연히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단 "개헌은 저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개헌 당시의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해서 추가의 혜택을 받겠다는 걸 우리 국민들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게 쉬운 일이겠냐"고 반문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불필요한 논란을 잠식시키려면 여권이 헌법 제128조 2항을 논의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 의장이 오는 9월 말, 10월 초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출범을 예고한 가운데, 제도 설계와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연말 정치권을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4년 연임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하려면 권력구조 개편의 당위성을 국민 앞에 잘 설명해야 한다. 비상계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의 핵심은 단임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다. 당위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8년짜리 제왕보다 5년짜리 제왕이 낫다'는 여론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