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도 포기, 처참한 상황"…문체부 장관 '쓴소리'

입력 2025-09-04 14:02
수정 2025-09-04 14:19
"K-컬처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현장의 현실은 처참하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4일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현실은 화려한 모습과 너무 달라 당혹스럽고 당황스러웠다"며 이 같이 말했다.

최 장관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통해 "엄청난 기회가 온 것은 맞지만 또 한편으론 '지금이 정점'이라는 절망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꽤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대로 축제와 같은 상황에 흥겨워만 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특히 영화 산업의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최 장관은 "올해 국내에서 제작되는 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영화가 20편도 안 된다고 한다"라며 "투자가 멈춰 영화 제작 현장에 돈이 말랐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해에 20편이 안 되는 제작 편수라면 영화업계의 직업군들이 상시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며 "영화인들이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영화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화 산업의 어려운 현실을 설명하면서 이창동 감독의 사례도 언급했다. 최 장관은 "최근 이창동 감독이 신작을 만들려고 문체부 지원금을 받았는데 나머지 투자금을 구하지 못해 결국 지원금을 반납하는 일이 있었다"며 "결국 넷플릭스로 가셨는데 투자를 못 받아서 해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가는 상황을 벗어날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해외 제작사들이 한국에서 영화·드라마를 제작하려고 해도 이를 지원할 예산이 없는 현실도 지적했다.

최 장관은 "해외 제작사들의 공동제작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줄 수 있는 예산이 한 푼도 없다"며 "K-컬처가 꼭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고 '메이드 위드 코리아'여도 좋은데 '위드 코리아'를 지원할 예산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도 과제로 제시했다. 최 장관은 "상시로 운영되는 공연장이 부족해 한류 팬들이 K-팝의 성지인 한국에 왔는데도 정작 공연을 못 본다고 한다"며 "정부의 재정이 마중물이 돼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도 너무 소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K-컬처 위기를 타개하려면 문화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최 장관은 "내년도 문화재정이 올해 예산에 비해 9.2% 정도 늘어난다고 하는데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문화재정 비율이 중하위권에 불과하다"며 "빛나는 성취에 비해 여건이 좋지 않지만 천금 같은 기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잘 챙겨서 문화정책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