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차 노조 "신사업 미리 통보해라"…산업계 덮친 '노란봉투법'

입력 2025-09-03 17:14
수정 2025-09-04 10:29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앞으로 신사업에 뛰어들거나 해외에 조립공장을 증설할 때도 노조에 미리 알려야 한다”는 조항을 단체협약에 넣자고 회사측에 요구했다.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서도 노조가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한 것이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의 결정’도 쟁의 대상에 넣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2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대한민국이 ‘파업 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산업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영 간섭하겠다는 현대차 노조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최근 조합원들에게 ‘신사업 통지 의무’를 올해 단체협약에 추가하는 방안을 사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산업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신사업 진출은 고용 안정과 직결된다”며 “사전 통지는 고용 안정을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가 로봇이나 미래항공교통(AAM) 등 신사업에 투자하려면 사실상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차 노조는 또 해외 공장 설립은 물론 해외 SKD(부분조립생산) 공장을 증설할 때도 노조에 미리 알리는 방안도 사측과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회사가 해외 공장을 신·증설할 때만 노사가 참여하는 고용안정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했는데, 범위를 SKD로 넓힌 것이다. SKD는 모듈 상태로 수출해 조립만 하는 공장으로, 일반 공장보다 공정이 단순하다. 업계 관계자는 “신사업과 SKD 공장 증설까지 노조와 상의해야 하면, 의사 결정이 늦어지면서 산업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차 노조는 장기 근속자를 위한 신차 할인 기간도 2027년 말까지 ‘신차 출시 6개월’에서 ‘판매 개시 6개월’로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노조원이 받을 수 있는 혜택 기간이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을 등에 업고 현대차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쏟아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산업계로 퍼지는 노란봉투법현대차 울산 5개 공장 생산라인은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일제히 멈춰섰다. 노조의 파업 지침에 따라 오전 근무자들이 평소보다 2시간 빨리 일손을 놓아서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건 7년 만이다. 시간당 평균 375대를 생산하는 울산공장은 이날 4시간 파업으로 1500대의 생산 손실을 봤다. 전주와 아산공장 생산라인도 4시간씩 스톱됐다. 미국의 수입차 관세 여파로 철수설까지 불거진 한국GM 노조도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4시간 부분 파업을 벌였다.

조선업계도 파업에 몸살을 앓고 있다. 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 등 HD현대 조선 3사 노조는 이날 오후 1시부터 4시간 파업을 벌였다. 이들 노조는 파업 이유중 하나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결정한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 결정을 들었다. 쟁의행위 범위를 임금·근로조건에서 구조조정과 사업 통폐합 등으로 확대한 노란봉투법이 파업의 빌미를 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 노조는 “합병으로 희망퇴직이나 일방적인 전환 배치가 이뤄지면 맞서 싸우겠다”며 고용안정 합의서 작성을 사측에 요구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하청업체 폐업에 따른 임금체불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 역시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노란봉투법이 영향을 준 셈이다.

신정은/김보형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