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의무소각 예고에 EB로 피신하는 기업들

입력 2025-09-03 19:51
이 기사는 09월 03일 19:5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업들이 자기주식과 자회사 지분을 기초로 교환사채(EB) 발행에 속속 나서고 있다. SK케미칼은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유동화해 확보한 자금을 신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하림지주와 LS그룹 계열 지주사인 인베니(INVENI) 등 일부 기업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통과를 앞두고 발 빠르게 EB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모습이다. SK케미칼, 자회사 지분으로 EB발행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케미칼은 자산운용사, 사모펀드(PEF) 등 잠재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SK바이오사이언스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투자 의향을 타진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운용사에 투자 여부를 묻는 단계”라고 말했다.

SK케미칼은 2018년 백신(VAX)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SK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했다. SK케미칼은 SK바이오사이언스 주식 66.43%를 보유한 대주주다. 이 가운데 지분 6%가량을 토대로 2400억원 규모 EB를 발행할 예정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1년 유가증권시장에 공모가 6만5000원에 상장했다. 그해 하반기 주가가 3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이후 꾸준히 내리막을 보였다. 이날 주가는 4.69% 오른 4만9150원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3조8518억원이다.

SK케미칼의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유동화는 지난해부터 SK그룹 내부에서 꾸준히 논의돼온 사안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유동화해 확보한 자금을 SK케미칼 신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SK케미칼은 바이오를 넘어 친환경 소재·에너지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그린소재 중심 사업 구조로 전환 △차세대 의약품 원료 사업 등이 새로운 투자처로 거론된다.

SK케미칼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일부 지분을 활용해 현금을 확보하고, 이를 중장기 성장동력 발굴에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SK케미칼은 올해 열병합발전소 건설에 940억원 가량을 추가 투자(총 투자금액 6200억원)했고, 백신부문에서는 독일 IDT Biologika 인수와 함께 안동공장 증설과 송도 연구·개발센터(R&PD) 건립에 투자하고 있다.
기업들 자사주 기초 EB발행 나서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은 다른 기업들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LS그룹의 전선 및 케이블 솔루션 전문 기업 LS전선도 LS마린솔루션 지분을 기초로 한 4000억원 규모 EB 발행을 추진 중이다. LS전선은 LS마린솔루션 지분을 66.75% 보유하고 있다. LG화학도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활용한 유동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LG화학은 지난 5월 EB를 차환 발행해 1조3000억원을 조달했다.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도 증가하고 있다. 인베니(INVENI)도 자사주 671만1000주를 활용해 468억원 규모의 EB를 이날 발행했다. 발행주식 총수 대비 13.13% 수준이다. 하림지주는 자사주를 기초로 1000억원대 EB 발행을 추진 중이다. 채무상환 대비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양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를 활용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소각해야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자사주를 담보로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EB가 줄을 잇는 이유다.

다만 정부 정책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처럼 보일 수 있는만큼 EB발행을 놓고도 기업들은 고민이 많다. 기업들은 EB이외에 주가수익스와프(PRS)와 카드대금 유동화증권 등 사모시장을 통해 추가 자금을 모집하는 모양새다.

한 IB 관계자는 “기업들도 자사주 관련 상법 개정을 앞두고 조달을 서두르는 모습”이라며 “이들의 자금조달을 주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