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08일 10:5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코스닥 상장사 유아이엘을 2016년 인수한 최대주주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 이해관계와 어긋나는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해당 최대주주가 소유한 베트남 법인은 유아이엘과의 거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익 규모는 유아이엘 인수를 위해 사용한 자금을 대부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유아이엘은 자회사 지분 일부를 오너 일가의 회사에 돌연 매각하기도 했다. 영업중단 상태였던 자회사가 베트남 회사를 사들여 활로를 찾아 기사회생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매각 가격은 과거 인수 때보다도 낮았다. 이같은 오너의 행보가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트남 회사 통해 인수자금 회수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유아이엘홀딩스는 2016년 12월 휴대폰 부품업체 유아이엘을 인수했다. 동국제강으로부터 유아이엘 지분 34.82%를 586억7000만원에 사들였다. 인수 당시 유아이엘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김상주 전 유아이엘 대표(지분율 40%)였지만, 이듬해 1월 케이티씨(51.6%)로 변경됐다. 케이티씨가 인수 자금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급해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박찬화 케이티씨 대표가 유아이엘의 실질적 최대주주에 올랐다. 케이티씨는 박찬화 대표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6월 말 기준 케이티씨의 유아이엘홀딩스 지분율은 67.7%다. 유아이엘홀딩스는 유아이엘 지분 37.1%를 들고 있다. 케이티씨와 박 대표는 각각 유아이엘 지분 11.9%, 1%도 직접 보유 중이다. 케이티씨는 유아이엘과 마찬가지로 휴대폰 부품업체로, 심(SIM) 트레이(휴대폰에서 심 카드를 넣고 빼는 받침대)를 생산한다.
인수 뒤 케이티씨의 100% 자회사인 케이티씨베트남의 실적은 고공행진했다. 케이티씨베트남은 2017년 매출 579억원, 순이익 126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 매출과 순이익도 각각 637억원, 99억원에 달했다. 케이티씨베트남은 유아이엘을 사실상 단일 고객으로 둔 회사다. 케이티씨베트남이 유아이엘에 실리콘 형상을 공급하고, 유아이엘은 이를 가공해 부품으로 완성하는 거래 구조다.
케이티씨베트남은 유아이엘과의 거래에서 거둔 이익을 배당 형태로 케이티씨에 지급했다. 3년 사이 배당금으로 지급한 돈만 288억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74억원, 2018년 102억, 2019년 112억원을 지급했다. 베트남 법인의 배당 만으로도 케이티씨는 유아이엘 인수 과정에서 지출한 자금 상당 부분을 회수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거래 구조가 케이티씨베트남에 유리하게 설정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유아이엘과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1835억원, 13억5000억원이었다. 순이익률이 0.7%에 그친 것이다. 같은 해 케이티씨베트남의 순이익률은 21.8%에 달했다. 시장 관계자는 “협력사의 순이익률이 고객사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사회생 시켜놓고 오너일가에 매각최근 유아이엘이 자회사인 에이치앤씨테크의 지분을 매각한 점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아이엘은 작년 말 에이치앤씨테크 지분 10%를 에이치제이무역에 4400만원에 매각했다. 에이치제이무역은 박 대표의 일가족이 경영하는 회사로 추정된다. 에이치제이무역의 박혜진 대표는 2024년 말까지 박찬화 대표와 같은 주소지에서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녀 관계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에이치앤씨테크는 작년 초까지 경영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유아이엘은 2019년 10월 전자부품인 ‘베이퍼 챔버(vapor chamber)’ 양산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에이치앤씨테크를 인수해 관련 기술 개발도 시도했다. 하지만 2021년 돌연 개발 보류 결정이 내려진 가운데 영업 중단이 결정됐다. 에이치앤씨테크는 2021년 8340만원, 2022년 1억4836만원, 2023년 5456만원의 순손실을 냈다. 매출도 거두지 못했다.
에이치앤씨테크가 기사회생한 것은 작년 유아이엘의 주요 거래처인 베트남 회사를 인수하면서다. 작년 4월 유아이엘은 에이치앤씨테크에 120억원의 채무보증을 제공했고, 에이치앤씨테크는 이를 바탕으로 1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코스닥벤처 일반 사모투자신탁의 신탁업자 지위로 미래에셋증권, KB증권 등이 납입했다. 에이치앤씨테크는 이후 30억원을 들여 대일테크베트남 지분 100%를 대일하이테크로부터 인수했다.
대일테크베트남 역시 휴대폰 부품회사로 유아이엘과 거래 규모가 상당하다. 유아이엘은 작년 이 회사에서 427억원 규모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아이엘은 부품 완성에 필요한 세부 부품을 이곳에서 공급받고 있다. 유아이엘은 과거 대일하이테크 지분 30%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작년 말 이를 모두 매각했다.
대일테크베트남을 인수하며 에이치앤씨테크의 실적은 대폭 개선됐다. 올해 상반기 17억3600만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순이익은 지난해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실적이 개선된 유아이엘의 지분을 돌연 오너일가 측 기업에 처분했다는 점에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더군다나 지분 10% 매각가는 2019년 10월 인수가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유아이엘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16억8000만원을 들여 에이치앤씨테크 지분 60%를 인수했다. 10% 매각가를 단순 계산하면 1억6800만원이다.
더군다나 유아이엘이 실적이 좋아진 에이치앤씨테크를 작년 말부터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재분류하면서 의문은 커지고 있다.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분류하면 실적이 연결재무제표에 모두 반영되는 대신 보유 지분에 해당하는 만큼만 인식된다. 유아이엘은 “에이치앤씨테크를 종속기업에서 제외하는 것은 회계,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에이치앤씨테크의 재무상태는 대일테크베트남 인수 영향으로 오히려 좋아졌다.
한 시장 관계자는 “대규모 지원으로 살려놓은 회사의 지분율을 돌연 낮추는 결정을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에이치앤씨테크가 베트남 회사를 통한 유아이엘과의 거래 과정에서 대규모 이익을 거두는지 지켜볼 일”이라고 분석했다.
제기되는 의혹과 관련해 유아이엘 측은 “케이티씨는 그동안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 유아이엘 인수를 결정한 것”이라며 “케이티씨베트남은 2010년 설립 이후 2016년까지 배당을 유보했기 때문에 3년간 많은 배당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유아이엘은 다른 코스닥 상장기업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의 배당을 실시하는 등 주주환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무상증자를 실시하고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해 지분을 취득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