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10만원·전기튀김기 5만원…골목마다 폐업 주방용품 '산더미'

입력 2025-09-03 17:33
수정 2025-09-11 15:55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서울 황학동 가구거리. 좁은 골목마다 회색빛 업소용 싱크대와 냉장고, 튀김기가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쇼케이스 냉장고 10만원’, ‘전기튀김기 5만원’이라고 쓴 손글씨 가격표가 눈길을 끌었지만, 구매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상인들은 폐업 점포에서 물건을 가져가 달라는 문의는 많은데 사는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0년째 이 거리를 지켜온 김모씨(62)는 “예전에는 폐업하는 가게가 드물어 필요한 물건만 겨우 골라올 수 있었다”며 “그런데 요즘은 하루에도 몇 집씩 문을 닫으니 업자들이 통째로 물건을 가져가라는데 이게 계속 쌓이고 있어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인근 창고 문을 열자 업소용 냉동고와 테이블, 전자레인지가 한데 뒤엉켜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일부는 먼지가 쌓인 채 방치돼 있었고, 리프트 없이는 출입구를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김씨는 “예전에는 싱크대 하나 가져오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제발 ‘싹 다 가져가 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고 했다.

중고 물건이 넘치다 보니 값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다. 한 주방기구 판매업자는 “3만원에 내놓은 전기오븐을 아무도 안 가져가 결국 SNS나 온라인 판매를 통해 한 개씩 처리하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또 다른 상인 이씨(55)는 “하루에도 두세 건씩 ‘가게 물건 통째로 가져가 달라’는 연락이 오는데, 절반 이상 거절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시에 들이닥친 폐업 쓰나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폐업 점포는 2022년 6만194곳에서 2023년 7만2203곳, 2024년 7만4897곳으로 지속해서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는 개업 업체(6만307곳)보다 폐업한 업체가 1만4590곳 더 많았다. 서울시가 2019년부터 외식업과 서비스업, 소매업 등 ‘생활 밀접 업종’을 대상으로 개업과 폐업 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폐업 업체가 개업 업체보다 많았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