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드 메달 따도 명문대 못가"…해외로 떠나는 수학 영재들

입력 2025-09-03 17:29
수정 2025-09-04 15:10
“국제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도 대학 입시에 쓸 수 없다면 수학 교육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3일 대전 유성구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만난 김재경 의생명 수학 그룹장(KAIST 수리과학과 교수)은 “정부가 사교육 과열 방지를 이유로 올림피아드 특채를 없애 학생들의 동기부여가 약해졌다”며 “더 이상 학자의 애국심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과학 퇴보를 막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국내 수학 교육 수준 자체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힌다고 평가했다. 올해 한국 올림피아드 대표단은 국제 무대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물리에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를, 수학에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하며 출전자 전원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학생의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수학·과학 영재교육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 사이에서 매년 오르내리는 얘기가 있다. 몇 년 전 국제과학올림피아드 메달을 딴 A군이 서울대 입시에서 고배를 마신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진학한 사례다.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MIT가 장학금까지 지원하며 A군을 영입했다는 점이다. 당시 A군은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국내 대학 합격 문턱을 넘지 못했다. MIT 평가는 달랐다. 국제대회 입상으로 입증된 그의 영재성을 높이 샀다. 이 사례가 한국 10대 영재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국내에선 수학·과학만 잘해서는 살아남기 어렵고 결국 해외로 가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서다.

현행 입시제도는 영재교육과 모순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5년 8만9372명이던 영재교육 대상자는 지난해 4만1020명으로 54.1% 급감했다. 영재교육이 진학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참여를 꺼리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과 비교하면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국 칭화대만 해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입상자와 전국 수학경시대회 수상자를 특례 입학시켜 교육하는 ‘야오반(姚班)’을 운영한다. 한국 정부는 영재 진학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국제올림피아드 입상자 진학 현황’을 요청했지만 교육당국은 “외부 수상 기록은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기지 않도록 돼 있어 관련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정부가 사교육 조장을 막겠다는 취지로 2011학년도부터 외부 수상 기록 기재를 전면 금지한 결과다.

한 영재학교 진로부장 교사는 “‘두뇌 유출’이 교수와 석·박사 연구원이 아니라 10대에서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경/이영애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