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삼성전자 미국법인과 LG전자 북미법인이 미국 정부에 내야 할 관세를 낮추기 위해 이전가격을 조정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을 백악관에 신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등에 업고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견제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현지시간) 가전·회계업계에 따르면 월풀은 지난달 중순 이 같은 내용을 백악관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에 알렸다. 대상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제품 전체다.
이전가격은 그룹 내 계열사끼리 물건, 서비스, 자산을 거래할 때 정하는 내부 거래가격이다. 예컨대 삼성전자 베트남 자회사가 생산한 TV를 삼성전자 미국법인에 넘길 때 적용하는 가격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은 미국 국세청(IRS)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이전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IRS 지침대로 했다”며 위법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관세 무기' 든 월풀…삼성·LG와 또 충돌
美 우선주의 무기로 활용 관측업계에선 월풀의 행보를 삼성전자와 LG전자 견제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가전 시장 점유율은 올 1분기에 양사 합계 기준 36% 정도다. 월풀은 20% 수준이다. 월풀이 삼성과 LG에 내준 미국 내수시장을 되찾을 무기로 ‘미국 우선주의’를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월풀은 이전에도 삼성전자, LG전자와 악연이 있다. 월풀은 2011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자 두 회사가 부당한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미국에서 덤핑 판매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미국 상무부는 한국 업체들의 제품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를 물렸다. 삼성과 LG가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하거나 보조금을 받고 수출했다고 징계를 내린 것이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반덤핑 조사가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해 2016년 승소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덤핑 관세를 유지했다. 한국은 WTO로부터 미국에 8481만달러의 보복관세를 매길 권한도 받았지만, 보복하진 않았다. 주요 수출대상국인 미국에 맞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에도 월풀의 공격은 이어졌다. 트럼프 정부는 2018년 1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제조한 수입 세탁기에 대해 120만대 이하까지는 20%, 그 이상 물량에는 50% 관세를 물리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세이프가드는 조 바이든 정부 때인 2023년 2월에야 종료됐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월풀의 이번 공격도 “예상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조업체에 힘을 실어주려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사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월풀이 전방위로 백악관에 로비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국 정부도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한 월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면 다른 미국 기업의 한국 기업에 대한 무역 견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뉴욕=박신영 특파원/황정수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