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기준 미국 연방정부와 산하기관이 적용 중인 규제는 22만2896개 항목(sections)이다. 2010년(20만8929개)과 비교하면 1만4000개가량 증가했다. 효용이 다한 규제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규제가 신설되는 일이 되풀이됐다는 얘기다.
규제가 증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정부 공무원들이 규제 철폐에 소극적이다. 규제가 줄면 일거리가 줄고, 영향력도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속내다. 입법부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일에는 열정적이지만,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여러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특정 규정만 없애는 게 만만찮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인 데다 잘못 손을 댔다가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제때 없애지 못한 ‘좀비 규제’는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 행정 비용이 불어나고, 민간투자 활력을 떨어트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규제 철폐 해법은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정부효율부(DOGE)였다. 이 기관 홈페이지엔 규제 철폐 성과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현재 1위는 신용카드 과징금 규제 등을 없애 147억달러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이다. DOGE의 최종 목표는 22만 개 규제 항목 중 절반을 없애는 것이다. AI를 활용하면 규제 축소에 드는 시간을 최대 93% 줄일 수 있다는 게 DOGE의 주장이다.
미국 전문지 디인포메이션은 그제 금융시장 감독기구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DOGE 직원들과 팀을 이뤄 불필요한 상장사 보고 규정 수천 개를 없애고 있다고 보도했다. DOGE 설립을 주도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기업으로 돌아간 후에도 규제 철폐와 예산 절감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보도의 골자다.
한국은 ‘갈라파고스 규제’가 유독 많은 나라다. 자율주행도, 약 배송도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정부는 내년 AI 예산을 10조1000억원으로 올해의 3배 수준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참에 미국처럼 ‘규제 없애는 AI’도 함께 개발하는 게 어떨까 싶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