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혐의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맞물려 터져 나왔다. 참여연대가 2016년 분식 의혹을 처음 제기하면서다. 합병 비율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바에서 대규모 분식회계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애초 불가능한 얘기였다. 논란이 된 지배력 변경 회계 처리는 합병 수개월 뒤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회계 감독을 책임지는 금융감독원은 조사 후 “문제없다”고 결론을 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뒤집혔다. 참여연대가 재차 의혹을 제기했고, 금감원은 재조사에 나서 분식회계로 의견을 바꿨다. 2018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도 고의 분식회계로 결론 내렸고, 이듬해 검찰은 기소했다. 두 달 전에야 대법원의 무죄 선고가 나왔다. 의혹을 벗는 데 10년이 걸린 셈이다. 그 피해는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반성문을 쓰지 않는다. 10년 족쇄 풀리자마자삼바 광풍은 섬뜩했다. 정치가 전문 영역인 회계 분야까지 좌지우지하는 걸 모두가 지켜봤다. 압권은 전문가 집단인 금감원이 같은 사안에 대해 조사 의견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과정이었다. 2000명 넘는 금감원 직원 가운데 절반이 변호사 회계사 박사 등 전문인력이다. 정치적 총대를 메고 분식회계라는 답을 정해 놓았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당시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공정하게 조사하겠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삼성은 물론이고, 투자자도 직접적인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분식회계 낙인이 찍힌 삼바 주가는 급락했고, 거래정지되면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삼성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초래된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삼바 ‘10년 족쇄’가 풀리자마자 금감원장에 참여연대 출신 이찬진 변호사가 선임됐다. 과격한 사람이 아니라던 신임 원장의 행보는 벌써 예사롭지 않다. 검찰에 넘긴 MBK파트너스에 대해 이례적으로 재조사를 시키면서 사모펀드(PEF)업계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삼성생명 회계처리 건에 대해서도 “시간 끌지 않고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과거 판매한 유배당 보험의 계약자 배당 관련 회계처리에 대한 금감원 유권해석을 뒤집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선 본능적으로 또 다른 삼바 광풍을 우려한다. 반전 기회는 있다이재명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을 유도해 주가 부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코스피지수 5000 시대가 오려면 삼바 광풍 같은 사태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제라도 금융당국 수장들과 관련자들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밸류업은 기업이 본질적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이 줄줄이 기업들을 짓누르고 있지만 아직 늦진 않았다.
이 대통령이 지시한 경제 형벌 완화 프로젝트에 시장이 거는 기대가 크다. 정부와 여당은 배임죄나 양벌규정같이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경제 형벌 규정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현재 6000개가 넘는 경제 형벌 규정 가운데 30%를 개정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금융당국과 검찰의 오버액션을 자제시키고, 기업 경영의 운신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