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지난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대패한 것은 ‘현금 살포’ 공약 때문이라고 반성문을 썼다. 물가 대책으로 전 국민 1인당 2만엔씩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가 ‘선심성’이라는 비판을 받아 역풍을 맞은 점이 참패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자민당은 해당(解黨)할 각오로 재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 패배 요인 1순위 ‘현금 지급’2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자민당은 이날 오전 참의원 선거총괄위원회에서 선거 대패 요인을 분석한 보고서를 승인했다. 선거 패인으로 ‘돈 뿌리기’라는 비판을 받은 현금 지급 공약을 제일 먼저 꼽았다.
자민당은 선거를 3개월 앞둔 4월 물가 상승 대책으로 현금 지급 공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은 악화했다. 물가가 올라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건 맞지만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돈을 주겠다는 건 선심성이 아니냐는 지적이 들끓었다. 당시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전 국민 현금 지급과 관련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6%에 달했다. 예상 밖으로 싸늘한 여론에 놀란 자민당은 현금 살포 논의를 접었다.
자민당은 6월 들어 현금 지급 공약을 다시 꺼냈다. 이는 야당의 ‘소비세 감세’ 공약에 대응할 카드였다. 당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적자 국채에 의지하지 않고 선심성이 아닌 새로운 지원금을 참의원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돌아서지 않았고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 선거에서 과반 의석 달성에 실패했다.
자민당은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 대책이 국민에게 와닿지 않았다”며 “공약에 포함한 현금 지급 정책 결정이 지연된 점 등으로 당이 하나가 돼 국민에게 설명하는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는 “현금을 지급하는 방침은 재정과 청년 미래를 책임진다는 메시지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 8일 이시바 운명 갈릴 듯
기하라 세이지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양원(중·참의원) 의원총회에서 선거 참패 요인을 보고했다. 총회에 참석한 이시바 총리는 선거 대패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고물가, 관세 협상 등 과제에 관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강조한 뒤 “책임을 피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리에 매달릴 생각은 전혀 없다”며 추진 과제로 방위력 강화 등 중장기 대처가 필요한 주제까지 거론했다. 이시바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은 이날 총회에서도 책임을 추궁했다. 이시바 총리의 정치 운명을 좌우할 자민당 조기 총재 선거 실시 여부는 오는 8일 결정될 전망이다. 이날 당 소속 의원 295명과 도도부현 대표 47명 등 총 342명의 의사 확인 절차가 이뤄질 예정이다. 342명 중 과반인 172명 이상이 찬성하면 총재 선거를 앞당겨 치를 수 있다.
이시바 총리 측은 최근 내각 지지율 상승을 명분으로 조기 총재 선거를 치를 필요가 없다고 설득할 방침이다. 8월 니혼게이자이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42%로 7월보다 10%포인트 상승했다. 조기 총재 선거와 관련해서도 ‘해야 한다’는 응답(39%)보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52%)이 높게 나왔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