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한은의 이유 있는 '집값 오지랖'

입력 2025-09-02 17:42
수정 2025-09-03 00:20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하며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 7월과 같은 이유로 금리를 2회 연속 동결한 것이다. 한은이 집값을 근거로 내세운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집값은 정부가 관리해야 할 영역인데 한은 통화정책을 동원한 것은 지나친 오지랖이라는 것이다. 집값은 물가 문제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리 동결 결정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질문을 받자 특정 지역 집값을 내리기 위해 금리를 동결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답했다. 그럼에도 집값을 신경 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 주택 가격 변화, 월세 등이 소비자물가지수에 적게 반영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한국 물가 상승률이 2% 내외로 잘 관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값 상승에 따른 부담을 반영하면 상승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집값이 한은의 제1목표인 ‘물가 안정’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주요국은 자가주거비를 계산해 물가지수에 반영한다. 반면 한국은 전월세만 물가지수에 포함한다. 표본주택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계약 기간 2년간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 주거비 변동이 제대로 포착되지 못한다. 자가주거비를 포함하는 보조지표도 있지만 전월세를 선택하는 것의 기회비용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변동이 크지 않다.

실제 주택 가격 변동을 반영하거나 거주에 드는 사용자의 비용으로 주거비를 계산하면 집값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통계에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커진다.

한은은 ‘사용자 비용’ 개념으로 체감 자가주거비를 측정한 적이 있다. 6월 물가설명회에서 관련 보고서를 내놨다. 체감 주거비에는 자기자본의 기회비용뿐 아니라 차입금의 이자비용, 감가상각비 등이 들어간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주택 임차료는 2013년 12월보다 약 20% 상승(수도권 기준)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한은이 계산한 주거비로 보면 같은 기간 70~80% 오른 것으로 나온다.

이 방식의 주거비를 물가지수에 반영하면 물가 상승률이 통계청이 발표하는 것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최근 집값 상승이 나타나는 수도권에서는 주거비를 포함한 물가 상승률이 6월 2.4%로 계산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2%보다 높다. 1월엔 각각 2.7%, 2.2%로 격차가 더 컸다. 2019~2022년 집값 급등기 때는 통계청이 공개한 물가 상승률이 0%대일 때 주거비 포함 물가 상승률이 4%를 넘긴 적도 있었다. 물가 상승률에 드러나지 않는 집값의 물가 영향을 한은이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안심할 수 없는 가계부채집값 상승이 한은의 두 번째 목표인 ‘금융 안정’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정확히는 집값 상승에 따라 가계부채가 확대될 가능성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인데, 가계부채 흐름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국내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에 비해 4조2000억원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제한한 6·27 대책 이후 축소된 가계부채 증가 폭이 한 달 만에 두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집값 상승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가 높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한은의 8월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1로 한 달 전보다 2포인트 상승했다. 기대가 지속되면 가격은 더 오른다. “금리를 동결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한은의 결정은 그래서 오지랖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를 비판하기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추가 대책을 서둘러 내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