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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서북부 하이덴구에 있는 베이징대 캠퍼스는 곳곳이 공사 소리로 시끄러웠다. 최근 베이징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만난 한 학생은 “예산이 풍부하고 각종 기부금이 넘쳐나 여기저기 건물이 리모델링 중”이라며 “일년 내내 연구동 업그레이드 작업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는 한국 대학과 달리 베이징대는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대학 순위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 네이처 대학 연구 성과 순위에서 베이징대가 4위에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8년 전인 2016년엔 9위였다. 1위인 하버드대(미국)를 제외하면 2위 중국과학기술대, 3위 저장대, 5위 중국과학원대로 상위권에 모두 중국 대학이 포진해있다.
베이징대의 연간 예산(2023년 기준)은 약 261억위안이다. 한화로 약 5조1500억원이다. 서울대(1조7000억원)의 세배를 웃돈다. 중국 정부는 2020년 쌍일류 대학 구축을 목표로 세워 베이징대 등 40여개 핵심 대학에 대규모 재정 지원을 집중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들 대학을 2020년 세계적인 수준으로, 2030년 이후엔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와 함께 리옌훙 바이두 창업자 등 성공한 동문들의 천문학적 기부금은 연구 시설 투자와 우수한 교수진 영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베이징대가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을 뒤흔들고 있는 중국의 핵심 요람으로 부각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원석 베이징대 물리학과 AI 반도체 소재 전공 박사는 “베이징대의 유일한 단점은 주변에 천재들이 너무 많아 돋보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내로라하는 교수진뿐 아니라 새로운 AI 연구에 쉼없이 시설·인력 등 투자를 지속해줘 최고의 연구 환경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베이징대 이공계는 말 그대로 기업가형이다. 교수진들도 논문의 양적 평가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논문 실적이 적더라도 영향력이 큰 논문이나 특허를 더 강조하는 풍토다.
베이징대 관계자는 “논문 수보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에 평가의 초첨을 맞춘다”면서 “드물지만 졸업 요건을 맞추지 못해도 완전히 새롭거나 획기적인 연구를 진행한 박사 과정 학생들을 졸업시키기도 한다”고 전했다. 특히 AI 등 첨단 기술 분야 관련 수업은 이른바 ‘책상 머리’ 이론 능력보다 졸업 후 바로 창업이나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실전 AI 인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있단 얘기다.
실례로 30여명 규모 베이징대 대학원 AI 반도체 소재 전공 연구실의 지난해 졸업생(박사 학위 기준) 중 절반 가량은 중국 빅테크인 화웨이나 텐센트에 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초봉 90만위안(약 1억8000만원) 수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대 캠퍼스에서 만난 이공계 한 석사 과정 학생은 “빅테크에 취업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포스닥(박사 후 연구원)만 해도 연봉 40만위안(약 80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때조차 중국 전역에서 유일하게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한 곳이 베이징대 이공계”라고 말했다. “한시도 쉴틈이 없다”는 교수진들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