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한 손으로 들고나온 악기는 세계 최고의 명기로 꼽히는 1743산 과르넬리 델 제수 '카로두스(Carrodus)'였다. '신(예수)이 만든 악기'라는 뜻을 지닌 이 바이올린의 가치는 약 2000만 달러(약 280억 원)에 달한다.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 체임버 콘서트(시리즈4)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했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롯데콘서트홀이 2020년부터 여름 시즌에 선보이는 음악 축제다. 매년 한명의 아티스트가 예술감독을 맡아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올해 예술감독은 그리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맡았다. 그는 자신이 맡은 축제의 라인업을 두 작곡가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완벽한 구조를 추구한 음악으로 신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독일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구소련의 억압 속에서 음악으로 자유를 찾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다.
이날 공연은 바흐가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칸토어(음악감독)로 일한 '라이프치히 시기(1723~1750)에 남긴 작품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바흐는 6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BWV.1001~1006)를 남겼다. 공연의 첫 무대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3번(BWV.1006)이다.
양인모는 파이프 오르간을 배경으로 은은한 조명 아래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 프렐류드는 '하느님, 당신께 감사하나이다'라는 제목의 칸타타(BWV.29)의 서곡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곡을 연주한 양인모는 마치 18세기 독일의 한 교회에서 연주하는 한 명의 궁정 악사 같았다. 잔잔하고 고풍스러 느낌을 자아내는 루르(2악장)에서 여러 관객은 그의 연주 장면을 자세히 눈에 담으려는 듯,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있었다. 그는 4악장 미뉴에트에서는 활 끝에 완전히 힘을 빼고, 바이올린을 울려냈다. 양인모가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를 연주한 장면은 관객들에게 귀한 경험이었다. 약 300년 전 제작된 '과르넬리 델 제수'로 동시대 활동했던 바흐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순간은 그 자체로 귀중했다.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 카바코스는 바로크 음악으로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의미하듯, 바흐가 두 현악기를 위해 남긴 모음곡 중 바이올린의 마지막 작품과 첼로의 첫 작품으로 전반부를 구성했다.
그리스 출신의 첼리스트 티모테오스 페트린이 양인모의 무대를 이어받았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 G 장조(BWV.1007)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바흐가 남긴 6개의 첼로를 위한 무반주 모음곡(BWV.1007~1012) 중 첫 작품이다. 1악장 프렐류드에서 티모테오스는 물속에서 흔들리는 수초를 연상시키는 유연한 연주를 선보였다. 음악의 유속에 몸을 맡긴듯이 오른손 활의 움직임과 함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통해 연주했다. 4악장 사라방드에서 그는 마치 현에 활이 닿은 것을 첼로가 알지 못하게 하려는 듯 온전히 힘을 빼고 첼로를 울려냈다. 제 5악장 미뉴에트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는 마지막 6악장 지그를 시작하기 전,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후 끝까지 역동적인 음악을 한 치의 실수 없이 연주했다. 마지막 음에서는 마치 활로 첼로를 반으로 자르듯이 빠르고 긴 보잉으로 현을 그어 청량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후반부는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쇼스타코비치의 ‘알렉산드르 블록의 시에 의한 7개의 로망스(op.127)’가 무대에 올랐다. 양인모와 페트린,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소프라노 황수미가 함께했다.
첼로와 소프라노의 고요하고 몽환적인 이중주 ‘오필리의 노래’로 시작해, 피아노의 저음역을 통해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제2곡 ‘가마윤, 예언의 새’를 부른 황수미는 공포에 휩싸인 목소리로 노래했다. 제3곡 ‘우리는 하나였네’에서는 양인모의 바이올린 연주와 황수미가 사랑을 노래했다. 첼로와 소프라노, 피아노가 제4곡 '도시는 잠들고'를 쓸쓸히 연주한 후 제5곡 '폭풍'에서 다시 불안감이 조성됐다. 피아노의 오른손과 바이올린의 예민한 고음이 번개의 음향을, 피아노의 왼손이 폭풍의 포효를 표현했다.제6곡에서 첼로의 전주에 바이올린의 예민한 피아니시모와 황수미가 감정이 고조된 표현을 선보인 후, 마지막 제7곡 '음악'에서 피아노가 왼손 건반 아래쪽의 음들을 타건하며 제2곡 '가마윤, 예언의 새'에서 자아냈던 불안한 조성을 연주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희망을 찾으려는 듯 메이저 음을 내는 반주와는 반대로, 피아노가 끝까지 불안감을 조성하며, 음악이야말로 '신이 품은 정열의 술잔'이라고 찬양하는 소프라노의 가사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긴장감 속에 음악이 끝났다.
공연의 마지막은 5성부로 쓰인 바흐의 모테트 ‘예수, 나의 기쁨(BWV 227)’이었다. 김선아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바로크 원전 연주의 전통을 이어온 합창단답게 '듣기에는 좋지만, 연주하기 까다로운' 고난도의 작품을 완성도 높게 소화했다.
이날 무대는 독일 바로크 음악의 성스러운 울림과 20세기 러시아 음악의 불안한 긴장감을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바흐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오는 3일까지 계속된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