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법관 증원·내란재판부에 반기 든 대법원

입력 2025-09-01 19:46
수정 2025-09-02 00:22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 등 여당의 ‘사법개혁 5대 의제’에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여론전에 나섰다. 여당 내 강경파 주도로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등에 대해서도 “사법권 독립 침해”라고 반발하는 등 집권 다수당에 맞서 정면 돌파를 택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 “입법, 이례적 신속 진행…비상한 상황”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사진)은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말 대법관 증원(14명→30명)을 통한 상고심 적체 해소, 대법관 추천위원회의 다양성 확대, 법관 평가 제도 개선을 통한 공정한 인사 시스템 구축,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을 통한 기본권 보장 등 5대 개혁안을 이달 첫째 주 일괄 발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사법부 차원에서 나온 첫 반응이다.

천 처장은 가장 논란이 된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재판연구관 인력 등 대규모 사법 자원을 대법원에 집중적으로 투입시켜 사실심이 약화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법관평가위원회 등을 통한 법관 평가 제도 및 인사 시스템 변경에 대해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외부 평가와 인사 개입으로 법관과 재판의 독립이 침해되는 건 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천 처장은 민주당이 충분한 사법부 의견 수렴 없이 독자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종래 과정에 비춰보면 사법부가 참여할 기회 없이 입법 절차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는 비상한 상황”이라며 조만간 전국 법원장 회의를 소집하겠다고 했다. ◇ “내란특별재판부도 삼권분립에 어긋나” 대법원은 민주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115명이 공동 발의한 ‘12·3 비상계엄의 후속 조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안’(내란특별법)에도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천 처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헌법상 사법권은 사법부에 귀속돼 있고 국민에겐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27조)가 보장된다”며 “국회 등 외부 기관이 특별재판부 법관 임명에 관여하면 사법의 독립성, 재판의 객관성·공정성에 시비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기소된 형사 사건에 대한 법관 지정, 진행 중인 사건의 이관 등은 헌법 27조를 정면으로 위반한다는 게 대법원 입장이다. 천 처장은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부, 3·15 부정선거 행위자 특별재판부 등 과거 존재한 특별재판부들이 “당시 헌법에 근거했다”는 점을 들어 “어떤 경우에도 헌법에 정해진 사법부 독립은 존중돼야 한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라고 했다.

내란특별법은 국회와 판사회의, 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 중 대법원장이 특별재판부 소속 법관과 영장 전담 법관을 임명하도록 했다. 천 처장은 “피고인들이 (특별재판부 재판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하면 헌법재판소 판단을 거쳐 역사적 재판의 결과가 무효가 될 수도 있다”며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내란특별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국회에 공식 제출했다.

장서우/허란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