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은 첼리스트로 살았다. 다음 10년은 유명 배우의 아내로 살며 세 자녀 육아에 전념했다. 다음 10년은 다르게 살기로 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가방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패션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를 꿈꾼다.
가방 디자인 제조 회사 제이스앤리버의 김경미 대표(사진)는 지난달 29일 “고가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학생, 주부, 직장인 등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가 디자인해 내놓은 가방들은 브랜드 로고를 크게 박아 넣지 않았다. 가격대도 제일 비싼 보스턴백 제품이 35만원 정도다. 백팩, 크로스백, 파우치 등의 제품은 10만~20만원대다. 오프라인 매장 없이 무신사, H몰, 신라아이파크면세점 등 몇몇 온라인몰에서 팔며 소비자 반응을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첼리스트였다. 음악을 전공한 모친의 영향으로 첼로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선화예술고를 수석 졸업한 후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음악원 학·석사 과정을 밟았다. 보스턴대 박사 과정 중 잠시 귀국했을 때 만난 12세 연상의 배우 신현준 씨와 결혼한 후 한국에 정착했다. 이후 세 자녀를 키우는 전업주부와 남편의 배우 활동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사회 복귀를 위한 사업 아이템으로 왜 가방을 택했을까. 김 대표는 “유학 시절 악기와 악보 등 많은 물품을 들고 다녀야 했고, 자녀들을 키우면서도 기저귀와 육아용품 등을 챙겨야 했는데 꼭 맞는 가방이 없었다”고 말했다. 내부 주머니 칸이 구분되지 않고 크기만 한 가방은 내용물이 뒤죽박죽 섞이기 일쑤였다.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볍고 정리가 잘 되는 가방을 고안했다. 김 대표는 “경영학 교수를 지낸 아버지에게서 국내 제조업의 수출 역사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좋은 원단을 얻기 위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를 수개월간 훑고 다녔다. 동대문 패션타운에서는 가죽 원단부터 디자인까지 한 번에 해결이 됐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버클 대신 로프 매듭으로 끈을 조절한 그의 아이디어는 특허를 받았다. 2022년 창업 후 3년간 국내에서 7건, 미국·일본에서 6건의 특허를 받았다.
김 대표는 종일 첼로를 켜던 좁은 연습실을 벗어나 역동적인 ‘진짜 세상’을 마주하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명품의 나라에 사는 시민은 로고가 요란한 가방 대신 실용적인 가방을 찾는다”며 “제조업 강국 한국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