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병원·공공청사 '종횡무진'…동남아 사로잡은 K건축

입력 2025-09-01 14:00
건축 설계·감리 기업 희림이 ‘K건축’의 글로벌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희림은 2001년 업계 최초로 단독 해외 진출에 성공한 뒤 25년 동안 332건의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해 약 7000억원을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희림은 영국의 건축전문 매체 ‘빌딩 디자인’이 매년 선정하는 ‘월드 아키텍처(World Architecture) 톱(Top) 100’의 작년도 순위에서 6위에 올랐다. 국내 건축사무소 중 가장 높은 순위다. 전년도 8위를 기록한 데서 두 계단 뛰어올랐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거둔 성과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희림은 자평했다. 최근 동남아시아 건설시장은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으며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투자 확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프라 개발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향후 건설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건축설계 수출 1세대 기업인 희림은 2002년 베트남 전력청(EVN) 청사 설계를 수주하며 해외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 호주, 프랑스, 홍콩 등 세계 각국의 10여개 건축회사가 초청된 국제지명 설계 공모에서 1위를 차지한 결과다. 당시 희림은 베트남의 관광명소인 하롱베이에 떠 있는 돛단배를 콘셉트로 현지 문화와 상징성을 디자인으로 담아 호평받았다. 베트남 최초로 인근에 있는 건물의 안정화를 위한 어스앙카공법(지반앵커공법)을 적용한 점도 기술적인 차별화 포인트였다.

EVN 청사 설계 수주를 계기로 희림은 첫 번째 해외지사인 하노이지사를 설립했다. 베트남 시장의 현지화 기반으로 마련해 현지의 굵직한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할 거점을 구축한 것이다.

베트남 거점 구축에 투자한 최대 성과는 호치민 롱탄국제공항 여객터미널 프로젝트 수주다. 롱탄국제공항은 베트남 최대 규모의 신공항으로, 향후 동남아시아 지역 허브공항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는 희림의 디자인 경쟁력과 공항 분야의 전문성을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은 첫 사례로 꼽힌다. 국제설계공모에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의 세계적 건축사무소들을 제치는 쾌거였다. 희림은 베트남을 상징하는 연꽃을 형상화한 독창적 디자인과 현지 문화적 특색을 반영한 건축미학을 제안했다. 이는 베트남 4대 도시에서 진행된 건축설계평가위원회와 전문협회의 심사뿐만 아니라 수십만명이 참여한 주민투표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와 호응을 얻었다.

공모 당선 이후 기본 및 실시설계를 수행했고, 시공감리용역과 ORAT(공항운영준비)용역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설계 계약을 넘어 공항 전 주기 수행 역량을 국제적으로 입증한 사례라고 희림은 강조했다.

롱탄국제공항 프로젝트 외에도 희림은 베트남 공공분야 수주에서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베트남 외교부 신청사 설계 공모에서는 일본, 독일, 베트남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겨 당선됐고, 베트남석유공사와 하노이텔레콤의 사옥 설계도 따냈다.

베트남 내 의료시설 설계 분야에서도 희림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완공된 2000병상 규모의 베트남 최대 군·민겸용 상급종합병원인 108 국방부 중앙병원의 설계를 맡았고, 같은 부지에 들어선 베트남 최초 감염병 전문 병원과 국가지도자 전문병원 등의 후속 사업도 수주했다. 또 하노이 메린종합병원(1000병상), 호치민 175 국방부 정형외과병원(500병상) 등도 맡은 바 있다.

이외에도 대표적 랜드마크 프로젝트들을 잇달아 수행했다. 특히 2010년엔 하노이시 정도(建都) 천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하노이 랜드마크72’는 하노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유명하다. 이를 발판 삼아 이후에도 도심 내 주요 복합개발 프로젝트를 연이어 수주하며 민간분야로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나아가 BRG그룹 등 베트남 대표 부동산 개발사, 베트남 최고 건설사로 꼽히는 코테콘(COTECCONS) 등과 전략적 업무협약을 통해 호치민 투티엠 에코&스마트시티, 하노이 따이호따이 신도시 중심지구 마스터플랜, 사이동 신도시 마스터플랜, 롱탄신도시와 연짝신도시 개발 마스터플랜 등의 신도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희림은 ‘베트남에서 가장 신뢰받는 해외 건축회사’의 위상을 쌓아가고 있다.

베트남을 이을 중장기 전략 시장으로 희림이 선정한 시장은 캄보디아다. 2017년에 프놈펜지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희림은 캄보디아 진출 2년 만에 프놈펜 신공항 프로젝트총괄관리(PMC·Project Management Consultancy)용역과 올림피아타워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국가 핵심 인프라와 대형 복합 민간개발 프로젝트에서 모두 경력을 쌓아 프놈펜 건설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혀 나갈 수 있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희림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진출한 지 각각 20년과 10년 이상이 흘렀다. 이 기간 각국 정부 및 주요 고객의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고 회사 측은 자평했다.

향후에도 희림은 동남아 지역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고부가가치 인프라 프로젝트, 복합개발사업, 친환경 설계영역까지 업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나아가 라오스, 미얀마 등 인근 국가로의 진출 가능성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희림 관계자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의 성과는 단순 진출이 아닌, 수년간 쌓아온 신뢰와 기술력의 결과”라며 “앞으로도 동남아를 전략적 핵심 시장으로 삼고, 인근 국가로의 확장과 고부가가치 프로젝트 수주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