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 승객 사상 최대에도…항공사, 힘겨운 날갯짓

입력 2025-09-01 16:16
수정 2025-09-01 16:17

항공업계가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탑승객에도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객 수요 증가로 공급 좌석은 늘었지만 과당 경쟁 탓에 항공권 가격이 하락하면서다. 미·중 무역 갈등 여파에 따른 화물 수요 위축과 원·달러 환율 상승도 발목을 잡았다. 제살깎기식 경쟁 구조를 탈피하려면 저비용항공사(LCC)를 중심으로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년 말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과 함께 대한항공 계열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 계열 에어부산·에어서울이 통합 LCC로 출범할 예정인 만큼 항공시장의 재편 가능성이 제기된다.◇화물 수요 감소·환율 상승 발목
국토교통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항공 통계 등을 종합하면 상반기 국내 공항에서 출발·도착한 국적 항공사와 외항사의 국제선 항공편 이용자는 4602만9842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4227만여 명)보다 7.6% 많아졌다. 기존 최대인 2019년 상반기(4556만 명)에 비해서도 1%(47만 명)가량 많다.

국제선 승객이 가장 많이 늘어난 노선은 중국이다. 상반기 중국 노선 승객은 781만 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3%(152만 명) 급증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적용 중인 한국인 비자 면제 조치가 항공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일본 노선도 전년보다 9.9%(120만 명) 증가한 1343만 명에 달했다. 이 밖에 미주(332만 명·전년 대비 7.8% 증가)와 유럽(225만 명·3%) 중동(53만 명·5.2%) 등 장거리 노선도 승객이 늘었다.

항공사들의 상반기 실적은 전년보다 악화됐다. LCC를 중심으로 좌석 공급이 늘어나면서 수익성과 직결되는 운임은 오르지 못하면서다. LCC인 진에어는 올 2분기 국제선 공급석킬로미터(ASK·좌석 수에 비행 거리를 곱한 값)는 5% 늘었지만 여객 수요(RPK)는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탑승률은 88.1%로 전년보다 소폭 떨어졌고 평균 운임도 작년 수준에 그쳤다.

항공사의 또 다른 먹거리인 화물은 미국발 ‘관세 폭탄’ 여파와 미·중 무역 갈등 등으로 주춤했다. 항공정보포털 시스템에 따르면 상반기 국제선 화물 수송량은 208만7000t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04만9000t)보다 1.8% 증가했다. 수하물을 제외한 화물 물동량은 전년보다 0.05% 감소한 145만5000t에 그쳤다. 인천공항은 상반기 144만2000t의 물동량(수화물 제외)을 기록해 전년보다 0.4% 줄었다. 항공 화물 부문 ‘캐시카우’(수익창출원)로 꼽히는 미주 노선이 부진했다. 상반기 인천과 미주 지역을 오간 화물량(32만5000t)은 작년 상반기에 비해 3.8% 줄어 감소폭이 컸다. 대한항공은 2분기 미주 화물 매출이 4% 감소했고 아시아나항공은 18.6%나 급감했다.

고환율도 항공사들의 발목을 잡았다. 올 상반기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40원50전으로 1년 전보다 6.7% 뛰었다. 항공사들은 항공기 리스비용과 유류비 등을 대부분 달러로 결제한다. 대한항공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300억원 안팎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기재를 리스로 운영하는 LCC는 환율 변동에 더 취약하다.◇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 개선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여객 호조에 힘입어 매출이 늘었다. 대한항공의 상반기 매출은 7조9418억원으로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1.7% 줄어든 7499억원을 기록했다. 화물 운송량 부진 속에 고환율 등이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나항공은 상반기 흑자 전환했다. 매출은 3조4186억원으로 1.5% 늘었고 영업이익은 261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에서 벗어났다. 순이익도 전년보다 6676억원 증가한 3440억원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작년 실적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에 더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 참여 등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된 결과다. 아시아나항공은 7년 만에 부채비율을 1000%(827%) 밑으로 낮췄다.LCC업계 실적 뒷걸음질…제주항공·티웨이 등 재무구조 악화
제주항공, 744억 손실로 적자 전환…무안공항 사고, 환율상승 직격탄
대한항공은 하반기에도 주요 관광 노선 중심으로 공급을 조정하고 프리미엄 장거리 노선 경쟁력을 앞세워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뉴욕·삿포로 노선 공급을 확대하고 방콕 노선을 재개하기로 했다. 화물사업도 여객기 하부 공간(벨리 카고)을 활용해 반도체 부품과 신선식품 등 긴급 물류 수요에 대응한다.◇부진의 늪에 빠진 LCC상반기 저비용항공사(LCC)의 실적은 뒷걸음질 쳤다.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제주항공의 상반기 매출은 7171억원으로 전년보다 28.6% 줄었고, 74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로 전환했다. 지난해 12월 무안공항 추락 사고 이후 노선 등을 축소하면서 좌석 공급이 줄어든 데다 원·달러 환율 상승에 직격탄을 맞았다.

제주항공은 지난 7월 1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해 재무구조를 보강한 데 이어 차세대 기재 도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장기적으로 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이다. 제주항공은 상반기 동급 기종보다 연료 효율이 10% 이상 높은 B737-8 4대를 들여와 노후 기종을 교체했다. 연말까지 2대를 추가 교체해 기단 현대화를 이어갈 계획이다.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확대해 온 티웨이항공은 상반기 매출이 8248억원으로 대형항공사(FSC)와 LCC 가운데 유일하게 두 자릿수 증가율(10.1%)을 기록했지만, 재무구조는 악화했다. 영업손실 1157억원, 순손실 1228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폭이 늘어나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최대주주인 대명소노그룹이 최근 2000억원 규모 자본 확충에 나서는 등 티웨이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이유다. 자본잠식률을 낮추고 부채 부담을 줄여 재무구조를 정상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한항공 산하 진에어와 에어부산은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진에어는 상반기 매출이 작년보다 2% 줄어든 7239억원을 기록했지만 16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다만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83.9% 급감했다. 에어부산의 매출은 작년 상반기보다 17.1% 줄어든 4209억원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29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67.4% 감소했다. 진에어는 주력인 일본·동남아시아 노선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냈다. 에어부산도 김해발 후쿠오카·오사카 등 지역 거점 노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익을 냈다.

항공업계에서는 FSC와 LCC 간 실적 차이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거리와 화물 노선에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한 FSC와 달리 LCC의 주력 노선인 일본과 중국 등은 공급 과잉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LCC들이 비용 절감과 공급 조정, 노선 다변화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제 유가와 환율,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등 외부 변수가 많다”며 “안전사고 여파에 따른 비용 증가 등도 실적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실적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휴가철인 3분기(7~9월)가 전통적인 성수기지만 미국발 관세와 환율, 경기 둔화 등 불확실성이 높은 편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