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의 상수원인 오봉저수지가 사실상 바닥을 드러내면서 식수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수율이 공급 마지노선인 15% 아래로 떨어지자 강릉시는 계량기의 75%를 잠그는 강도 높은 제한급수에 돌입했다.
31일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40분 기준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4.9%로 집계됐다. 전날 15.3%에서 0.4%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오봉저수지는 강릉 생활용수 공급의 87%를 맡고 있어 사실상 지역 식수의 ‘숨통’이다.
시는 지난 20일부터 저수율이 25% 아래로 내려가자 아파트 등 5만3485가구를 대상으로 계량기의 절반을 잠그는 제한급수를 시작했다. 이후 저수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계량기 75%를 잠그는 추가 조치를 내놨다.
농업용수 공급도 중단됐다. 당초 ‘3일 공급·7일 제한’ 방식으로 운영되던 농업용수 공급은 지난 23~29일 제한 기간이 끝난 뒤 30일부터 재개될 예정이었지만, 저수율이 15%선까지 떨어지면서 물을 댈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만 오봉저수지 외에 강릉에는 10곳의 저수지가 추가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정부는 전날 강릉에 자연재난으로는 처음으로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현장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가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전국적인 지원이 필요한 만큼 여유가 있는 지자체가 공동체 의식을 갖고 도와달라”고 지시했다.
한국환경연구원, 가뭄특별요금제 도입 권고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가뭄’이 3년 이상 이어질 경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3년차부터 생활·농업·공업용수 부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조 단위 경제 피해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환경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극단적 홍수 및 가뭄 발생으로 인한 워터리스크의 전략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극한가뭄이 3년 이상 지속되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연구진은 한강 유역 댐 저수량과 하천 유출량이 동시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상황을 ‘극한가뭄’으로 정의하고, 이를 토대로 세 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뭄 1년차에는 물 부족 문제가 크지 않지만 2년차부터 급격히 심각해진다. 생활용수 부족량은 1년차 41만8000t에서 2년차 6300만t으로 늘었고, 3년차에는 4억7000만t을 넘어섰다. 공업용수 부족도 2년차 7억4000만t에서 3년차 4억5000만t으로 치솟았다. 농업용수 역시 3년차 부족량이 1억6000만t에 달했다.
경제적 피해 규모, 2년차부터 조단위로 급증
경제적 피해 규모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가뭄 1년차 피해액은 78억원이었으나 2년차에는 1조5425억원, 3년차에는 9조2883억원으로 급증했다. 6년차 피해액은 9조3254억원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용인 첨단산업단지 등 물 수요가 늘면서 피해 규모가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댐의 ‘비활용 용량’을 적극 활용하고 발전용댐의 물까지 동원할 수 있는 체계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절수 캠페인의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가뭄특별요금제’ 도입을 권고했다. 가뭄이 발생하면 수도 요금을 인상해 수요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실제 2022~2023년 광주·전남 가뭄 당시 물 절약 캠페인과 요금 감면 조례가 시행됐지만 수돗물 사용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 한국환경연구원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가뭄 시 단수를 피하기 위해 평균 1만9300원의 추가 요금 지불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자의 88%는 가뭄특별요금제 도입을 수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