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이스피싱에 대한 금융사의 배상 의무 법제화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조치까지 동원해 초강경 보이스피싱 근절 대책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보이스피싱에 따른 피해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사·통신사까지 배상책임과 제재를 대폭 강화해 날로 고도화·조직화하는 피싱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정부 역시 단속 조직 및 인력을 대폭 확대해 피싱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금액 환수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기업 피싱 방지 의무 대폭 강화
28일 정부는 은행과 증권사 등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된 계좌를 관리한 금융사들이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영국과 싱가포르 등 금융사의 무과실 책임을 인정하는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비대면금융사고 책임분담’ 규정에 따르면 금융사는 피싱 앱이나 해킹 등으로 인증장치가 뚫려 피해를 본 경우에만 배상한다. 범죄자의 협박·기망으로 피해자가 직접 돈을 이체했을 땐 금융사가 배상을 하지 않는다. 범인이 검거된다고 해도 피해자는 현실적으로 돈을 돌려받기 쉽지 않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보이스피싱에 대해) 금융사들이 고객의 피해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금융사에 사회적으로 위험을 분담시키는 만큼 관심과 책임을 더 가져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용카드 시장은 기업이 카드 부정 사용 피해를 상당 부분 떠안은 덕분에 카드 거래가 활성화됐다”고 했다.◇대포폰, 피싱 문자 근절정부는 피싱 범죄에 대한 통신사(알뜰폰 운영사 포함) 책임도 대폭 강화한다. 범행에 쓰이는 대포폰과 피싱 문자 등을 근절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통신사는 특정 대리점·판매점에서 외국인 가입자가 급증하는 등 이상 징후를 판별할 기준을 마련해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신고해야 한다. 휴대폰 개통 시 ‘안면인식 솔루션’으로 신분증과 고객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대포폰이 대량 개통되면 통신사 등록 취소나 영업 정지 등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도록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한다. 대리점 등이 한 번이라도 고의·중과실로 대포폰 개통을 묵인한 경우 위탁 계약을 해지하도록 강제할 방침이다. 외국인의 개통도 기존 2회선에서 1회선으로 제한한다.
스마트폰 악성 앱 차단 체계도 구축한다. 먼저 대량문자 전송 서비스 사업자가 ‘악성 문자 탐지·차단 시스템(X-ray)’을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2차로 통신사가 피싱 문자를 감별해 해당 인터넷 주소 접속을 차단하고 전화번호 위변조 여부도 확인하도록 할 방침이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협력해 개별 단말기에서도 피싱 문자 등을 걸러낸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구글·삼성전자와 협의해 악성 앱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보이스피싱 통합 대응단 출범정부는 경찰청을 중심으로 금융위 방송통신위원회 금융보안원 등 유관기관이 모두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을 다음달 발족한다. 대응단은 정책협력팀, 신고대응센터, 분석수사팀으로 구성된다. 경찰청 통합신고대응센터 인력은 43명에서 137명으로 확대해 24시간 운영하며, 사후 상담에 그치지 않고 종합 대응에 나선다. 실시간 대응 체계를 마련해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10분 이내 긴급 차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보이스피싱 탐지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구축한다.
범인 검거를 위해 경찰은 수사 인력을 400여 명 증원해 전담수사체계를 갖춘다. 시·도경찰청에 피싱범죄 전담수사 조직을 설치해 221명을 투입하고 형사기동대,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도 인력을 100명 안팎씩 증원한다. 내년 1월까지 5개월간을 ‘보이스피싱 특별 단속기간’으로 지정해 집중 단속한다. 법무부 주관 ‘해외 보이스피싱 사범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해외 체류 총책급 범죄자의 검거 및 피해금 환수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이현일/류병화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