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한국에선 로보택시 못 달리는 이유

입력 2025-08-28 17:36
수정 2025-08-29 00:19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카카오모빌리티가 최근 ‘미래형 택시 산업 전환을 위한 자율주행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국내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과 법인택시업계가 자율주행 택시 상용화 시대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손을 맞잡은 것이다. 기존 택시 면허에 기반해 로보택시를 도입하고 관련 정책을 함께 구상하며 택시 종사자의 직무 전환까지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택시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혁신 서비스가 고사한 ‘타다 사태’를 떠올려보면 기존 택시업계가 신기술 도입의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운수 종사자의 일자리 전환 문제를 공식 의제에 올린 점은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상생과 포용의 새로운 모델’ ‘한국형 로보택시 도입을 위한 첫 단추’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마냥 반기기 어렵다. 자율주행 택시를 도입하려면 택시 면허를 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달려 있어서다. 이렇게 자율주행 택시 사업이 기존 택시 면허에 종속된다면 자본력이 적은 신생 기술 기업은 사실상 시장 진입이 불가능해진다. 이번 협약이 ‘택시 면허 없이는 로보택시도 없다’는 무언의 선언으로 들리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도 택시 면허제가 있다. 미국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는 택시 면허가 아니라 운송 네트워크 사업자 라이선스를 따로 받는다. 이를 통해 우버와 리프트는 택시 면허 없이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놨다. 서비스 시작 당시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은 건 미국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신기술과 서비스를 포용할 수 있도록 기존 규제를 정비했다. 중국에서도 택시를 운영하려면 정부에서 발급하는 운송증이 필요하다. 디디추싱 같은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기존 택시 면허제와 정면충돌했지만, 정부는 온라인 예약 차량 제도를 신설해 플랫폼 차량을 합법화했다. 획일적인 규제로 신기술의 진입을 가로막은 건 한국뿐이다. 이런 탓에 미국과 중국 대도시에선 낯설지 않은 상용 로보택시가 한국에선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우리나라에 로보택시가 꽃필 수 없는 건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전통적인 이해관계자에 의한 규제 카르텔과 포퓰리즘으로 버무려진 정책의 정치화 탓이다. 인공지능(AI) 등 거의 모든 핵심 첨단산업에서 중국에 뒤처지는 것도 기술 부족이 아니라 낡은 규제와 기득권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다.

이처럼 변화를 가로막는 아날로그 규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효과를 확인했지만 의료계의 반발에 밀려 있는 원격 의료 서비스, 개인정보보호라는 장벽 앞에 무력해지는 빅데이터 활용이 대표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첨단 기술·서비스와 아날로그의 불편한 동행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다. 혁신저항이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새로운 기술의 효익이 아무리 커도 관습적 불안이나 기득권 반발이 맞물리면 사회 전체의 수용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1865년 마부들의 권익 보호란 기치를 내걸고 자동차 운행을 극도로 제한하는 내용의 적기조례(Red Flag Act)를 도입해 산업 주도권을 내준 영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건 ‘거대한 우둔함’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 역할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 혁명으로 꼽히는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규제 개혁에 좌우되고, 정부 경쟁력 또한 규제 혁신 능력에 달려 있다. 정부는 기존 산업의 위기만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미래 산업 구도를 바꿀 패러다임 전환에 더 큰 용기를 내야 한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정치가 문제라면, 차라리 규제의 비용과 편익을 자동 평가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어 AI에 판단을 오롯이 맡기는 게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