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6선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키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로 5선의 나경원 의원을 전격 배치했다. 정부·여당의 강력한 개혁 입법 드라이브를 앞둔 가운데, 입법 전장 최전선에 이례적으로 중진을 앞세워 맞붙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8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에서 열린 의원 연찬회 원내 보고에서 법사위 야당 간사로 나 의원이 내정됐다고 밝혔다. 통상 상임위 간사는 재선급 의원이 맡는 것이 관례인 터라 의원들 사이에서도 '파격 인사'라는 반응이 나왔다. 기재위 간사인 박수영 의원은 "오늘 연찬회 최고 소식은 단연 5선 나 의원이 법사위 간사를 맡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유 수석부대표는 나 의원 내정 이유에 대해 "이제 선수(選數)와 어떤 상황과 관계없이 전투 모드로 들어가야 한다"며 "당에 어떻게 5선에, 원내대표를 지낸 분이 간사를 하느냐고 했는데 저희가 이젠 틀을 좀 깨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고 그 틀을 깨는 시작을 나 의원께서 해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법사위가 중요한 이유는 상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로 올라오는 모든 법안을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게이트키퍼'(문지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체계·자구 심사권’을 통해 법안을 사실상 지연시키거나 막을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어, 흔히 상원 의회에 비유되곤 한다. 이러한 막강한 권한 때문에 여야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매번 치열하게 맞붙는 것이다.
국회는 여야의 상호 견제를 위해 2004년 17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장은 제1당, 법사위원장은 제2당이 맡는 것이 관행(慣行)이었으나, 이는 21대부터 과반 의석의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면서 무너졌다. 22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에서도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가져갔다.
이춘석 법사위원장이 최근 주식 차명 거래 의혹으로 물러나면서 국민의힘은 공석이 된 법사위원장직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당내 최다선인 추 의원을 앉혔다. 6·3 대선으로 여야가 바뀌었을 때도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을 다시 배분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이때도 민주당은 사실상 묵살했다.
이처럼 여야 간 앙금이 깊고 '강 대 강' 대치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야당 간사로 이례적으로 5선의 나 의원을 내정한 것은 여당에 대한 '맞불'로 해석되고 있다. 검찰 개혁 등 정부·여당의 개혁 드라이브 속에 추 위원장을 상대할 카드로 나 의원이 적임자라는 판단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추미애 법사위'는 거대 의석을 앞세워 일방적인 의사진행을 일삼으며 의회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며 "이에 맞서는 국민의힘의 '나경원 법사위'는 압도적 논리와 실력으로 야만적 상임위를 정상화시킬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판사 출신 여성 중진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각 진영 지지자들로부터 프랑스 구국 영웅 '잔다르크'에 빗댄 별명을 가지고 있다. 추 위원장은 1997년 대선에서 대구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이후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고, 나 의원은 2019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초강경 투쟁 모드로 변신하며 '나다르크'라는 별칭을 얻었다.
정치권에서는 "전투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이 맞붙는 법사위 회의장이 이제 국회 최대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나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도를 넘어선 상황에서 민주당에서는 법사위원장을 6선의 추 의원을 내세웠다. 우리도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키는 면에서 물러설 수 없는 때"라며 "절체절명의 대한민국의 위기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맡게 됐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