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가 젊은 억만장자를 사칭한 가짜 후원자에게 속아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3월, 피터 갤브 메트 오페라 총감독은 1500만 달러(약 207억 원)의 기부를 약속한 메튜 크리스토퍼 피에트라스(1988~2025)의 기부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그는 이 후원을 코로나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메트 오페라 재정난의 해결책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와 오페라와이어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 피에트라스가 후원금의 이체 창구로 메트 오페라에 공유한 유한책임회사(LLC)의 계좌가 차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틀 뒤, 피에트라스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터 겔브 총감독은 후원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후원 기금 계좌에서 500만 달러(약 69억 원)의 인출을 승인받았다. 예술 후원에 진심인 메트 오페라의 일부 이사들은 오페라 제작 활동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며, 개인 후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 오페라하우스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가짜 억만장자의 정체
피에트라스는 메트 오페라의 2018~2019시즌 연차보고서에 5500~6499달러의 소액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19~2020시즌과 2020~2021시즌 그의 기부금 규모는 급증했다. 두 시즌에 걸쳐, 5만~9만9999 달러 구간 기부자로 발표됐다. 그동안 메트 오페라는 그에게 '젊은 이사(Young Associate Director)'를 거쳐, 이사회 최고 등급인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 직급까지 부여했다. 사기 행각이 발각되기 직전인 4월에는 메트 오페라에서 열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개막 갈라 콘서트에, 공동 의장직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피에트라스는 뉴욕 상류층 문화계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 자산가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억만장자들의 개인 비서일 뿐이었다. 그는 타임워너 그룹의 창업자 스티븐 제이 로스(1927~1992)의 미망인, 코트니 세일로스와 뉴욕 문화계의 주요 후원자로 유명한 그레고리 소로스의 개인 비서로 일하며 얻은 자산 접근 권한을 악용해, 가짜 기부 활동을 해 온 것이다. 타임 워너 그룹은 CNN, HBO 등 방송국과 워너브라더스(영화사), 타임지 등을 보유한 미국 대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그레고리 소로스는 미국 금융계의 거물 투자자 조지 소로스(1930~)의 아들이다.
뉴욕 대표 갤러리에도 번진 후원 사기
후원 사기는 1935년 개관한 뉴욕의 한 미술관에서도 같은 수법으로 행해졌다. 2021년부터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쳐 올해 4월 재개관한 프릭 컬렉션이다. 피에트라스는 2018년부터 소규모 후원자로 시작해, 2023년에는 연간 5만~9만9999달러를 후원했다. 2024년에는 무려, 100만~ 499만 9999달러 규모의 기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더욱이, 프릭 컬렉션은 그의 통 큰 후원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박물관 벽면에 새겼다.
5월 28일 메트 오페라에 1차로 1000만(약 138억 원) 달러 이체를 시도한 은행 거래가 '사기 거래'로 판정되기 전까지 피에트라스의 후원은 그레고리 소로스 소유의 부동산 관련 LLC(유한책임회사) 계좌를 통해 이뤄졌다. LLC 계좌는 발급 절차가 간단해 널리 쓰이지만, 실소유자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2015년 국제축구연맹(FIFA) 간부들의 뇌물 수수 사건,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 등에 불법 자금 이동의 은폐 수단으로 활용된 바 있다.
뉴욕 메트 오페라의 재정 현실
매년 대규모 제작비가 소요되는 상황에서 피에트라스의 1,500만 달러 후원 발표는 경영진에게 적자를 메워 줄 '동아줄'로 다가왔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메트 오페라의 최대 프로덕션인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Ring des Nibelungen)'의 제작비는 총 1,960만 달러(약 271억 원)로 1편당 평균 490만 달러(67억 원)에 달했다. 뉴욕에서 오페라 한 편을 제작하는 데 평균적으로 200만~ 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다고 밝혔다.
미국의 데이터플랫폼, 프로퍼블리카에 의하면 2024년 메트 오페라는 2억 8,398만 달러(약 3,934억 원)의 총수입을 올렸다. 공연제작비(임금 포함)와 미디어 홍보비를 포함한 총지출이 3억3097만 달러에 달해, 4,698만 달러(약 65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기부금은 총수입의 53%에 달하는 1억5,260만 달러(약 2,114억 원)다.
뉴욕타임스는 메트 오페라와 프릭 갤러리가 피에트라스의 모든 기부금에 대한 반환 요청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소로스의 한 가족이 "두 곳에 흘러간 도난당한 자금이 정당한 소유자에게 반환될 것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법률 전문가들은 향후 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두 기관이 이미 수령한 기부금을 반환하라는 명령을 받게 될 가능성도 크다. 억만장자를 사칭한 피에트라스의 이름을 건물 벽면에까지 새긴 프릭 갤러리와 메트 오페라는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가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