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화려한 패션계 뒤편에 숨겨진 우정과 욕망의 심리 스릴러

입력 2025-08-28 17:05
수정 2025-08-30 00:26
패션지는 겉보기에 언제나 반짝인다. 그러나 그 빛의 뒤편에는 보이지 않는 불안과 경쟁, 그리고 끊임없는 비교가 도사린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해리엇 워커 영국 더타임스 패션 에디터의 소설 데뷔작 <뉴 걸(The New Girl)>은 이 화려한 세계를 배경으로, “내 곁의 동료는 과연 친구인가, 아니면 삶을 위협하는 적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 스릴러다.

주인공 마고 존스는 글로벌 패션 매거진 ‘오트’의 잘나가는 에디터다. 성공적인 커리어와 다정한 남편, 고풍스러운 집과 세련된 취향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출산 휴가를 앞두고 자신을 대신할 후임으로 ‘만만한’ 프리랜서 기자 매기를 선택한 순간, 그녀의 삶은 균열을 맞는다. 매기는 예상을 뒤엎고 능력을 인정받으며 빠르게 자리 잡고, 마고는 육아와 불안 속에서 점점 투명한 존재가 돼간다. “늘 다음 유행을 다루는 업계에서 나는 한물간 유행이 된 기분이었다”는 독백은 화려한 패션계에서도 쉽게 밀려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보여준다.

저자는 패션업계의 치열한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하며 여성들 사이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잔혹할 정도로 섬세하게 드러낸다. 절친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온라인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협박, 대타였던 매기의 도약과 질투 어린 시선. 그 속에서 마고의 불안은 편집증으로 번지고, 급기야 “내 일자리를 빼앗고, 내 친구들을 빼앗고, 내 삶을 빼앗은 매기가 이제는 내 정신까지 빼앗으려 하고 있다”는 절규에 이른다.

소설은 두 여성의 교차되는 시선을 따라가며 우정과 경쟁, 동경과 증오가 뒤섞인 긴장감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패션업계를 다룬 히트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직장 내 권력 구도를 신랄하게 풍자했다면, <뉴 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완벽한 삶을 지켜내고 싶은 욕망’과 ‘그 자리를 빼앗고 싶은 욕망’이 맞부딪칠 때의 내면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화려한 패션계의 세계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비추는 무대라는 것이다. 유행은 빠르게 바뀌고, 그 속에서 인간관계 역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동료가 경쟁자가 되고, 우정은 순식간에 의심으로 바뀐다. 더운 여름, 스릴러의 오싹한 재미와 패션계 가십에 대한 통속적인 흥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소설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