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이 방사성폐기물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면서 올해부터 본격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단은 지난 26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한국정책학회와 공동으로 ‘2025 방폐물 관리 연차 보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는 공단이 지난 한 해 동안 추진한 방폐물 사업의 주요 성과를 공표하고, 미래 비전과 과제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다. 정부, 학계, 산업계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해 방폐물 관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 중저준위 방폐물 관리 세계 표준으로
조성돈 이사장은 이날 환영사를 통해 “방폐물 관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미래 세대에 안전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시대적 과제”라며 “에너지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뿌리이자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만 성립할 수 있는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조 이사장은 올해는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제도적 기반이 강화된 만큼 “방폐물 관리사업이 새로운 도약의 길로 나아가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번 연차 보고대회는 한국정책학회 학술대회와 연계돼 방폐물 관리 특별 세션, 공단과 한국정책학회 간 업무협약(MOU) 체결식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특별 세션에선 은재호 KAIST 교수가 ‘방폐물 관리사업의 갈등 관리와 향후 과제’를, 박형준 한국정책학회장이 ‘100년의 신뢰 구축을 위한 제언’을 주제로 각각 발표해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패널토론에선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지속 가능성과 신뢰 확보’를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핵심 거점인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경주 방폐장)은 현재까지 총 3만9000드럼의 방폐물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국가 방폐물 관리사업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는 2015년 7월 세계 최초로 동굴처분방식을 적용해 운영을 시작한 1단계 시설의 안정적인 운영 성과 덕분이다.
공단은 1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2025 세계 미래에너지 정상회의(WFES)’에 참가해 세계 최초 복합처분시설 운영 성과와 독보적인 데이터 통합 관리 기술을 선보였다. 이번 성과는 한국의 기술력이 글로벌 표준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경주 방폐장은 내년부터 2단계 표층 처분시설을 본격 가동한다. 2단계 시설은 저준위 및 극저준위 방폐물 12만5000드럼을 처분할 수 있다. 1단계 동굴시설과 동일하게 복합처분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준위의 폐기물은 동굴시설에서 처분하고, 낮은 준위 폐기물은 표층 시설에서 처분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 기술은 프랑스, 스페인 등 원자력 선진국에서 수십 년간 안전성이 입증된 기술로, 전체 관리 효율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 3단계 매립형 처분시설 건설한국은 원전 해체를 대비해 3단계 매립형 처분시설 건설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원전 해체 시 발생하는 폐기물의 약 67%는 극저준위 폐기물인데, 부피는 크지만 오염도가 낮다. 3단계 시설은 극저준위 폐기물 16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규모다. 지표면 인근 천연방벽을 활용한 매립 방식이다. 방사능 농도가 낮아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극저준위 폐기물의 특성을 고려한 경제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3단계 시설은 설계 및 안전성 평가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공단은 국민 생활 주변에서 발생하는 RI(방사성 동위원소) 폐기물의 안전관리를 확대할 계획이다. 전국 5만5000여 RI 이용기관의 관리 강화를 위해 ‘RI 폐기물 안전관리센터’를 설립하고, 발생 기관의 폐기물 등록을 의무화하는 등 관련 제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민관 합동 해외 진출공단은 국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중점 추진 과제를 설정했다. 2025년도 중점 추진과제는 사업·장기이슈 현안 해결, 신성장 사업 발굴, 경영 성과 창출 등 세 가지다.
공단은 특히 민간 산업과의 동반 성장을 위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방폐물 관리사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간 산업의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국내 기술력 수출을 통해 한국 방폐물 관리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공단은 기술 개발 연구 중심의 연구개발(R&D) 체계를 사업 중심의 R&D 체계로 전환할 계획이다. 원전 해체와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분야에선 한국수력원자력과 업무 협조를 원활하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