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은 4년 전만 해도 ‘뷰티 황제주’였다.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이 18년간 회사를 이끌면서 코카콜라, 해태htb 등 음료 자회사를 차례로 사들이고 생활용품 부문을 강화하는 등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결과였다. 2004년 1조원이던 LG생활건강 매출은 2021년 8조원으로 뛰었다. ‘국내 1위 생활용품·화장품’ 기업으로 도약했다. 시가총액은 25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위상이 확 달라졌다. 지난 6월 신생 뷰티업체인 에이피알에 시가총액을 추월당했다. 27일 종가 기준 LG생활건강의 시총은 4조6698억원, 에이피알은 8조1973억원이다. LG생활건강이 한때 ‘알짜’로 꼽혔던 음료 부문 구조조정에까지 나선 배경이다. ◇전면적 사업재편 착수
이날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코카콜라음료, 해태htb 등 음료 자회사 매각을 포함해 전면적인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일부 잠재 원매자를 대상으로 태핑(사전 접촉)을 진행하는 단계로, 글로벌 사모펀드(PEF)와 중견 식음료 기업들이 인수 후보자로 거론된다.
LG생활건강은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3853억원에 인수했다. 코카콜라음료는 미국 코카콜라 본사에서 원액을 공급받아 탄산수와 혼합하는 보틀링 회사로, 국내 코카콜라 제조·판매·유통사업의 독점적 운영권을 갖고 있다. 2010년엔 아사히맥주 등으로부터 썬키스트, 코코팜을 비롯한 다양한 과채 음료를 생산하는 해태htb(옛 해태음료) 지분 100%를 사들였다. 화장품·음료·생활용품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시장 환경이 급변했다. 본업인 화장품이 중국에서 역성장한 가운데 K뷰티 시장이 북미와 인디 브랜드, 뷰티 기기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LG생활건강은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중국 시장과 프리미엄 화장품에 집중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음료 부문도 실적 버팀목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음료 사업인 리프레시먼트 부문의 올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했다.
음료 자회사 매각은 LG생활건강의 전면적 구조조정 신호탄이란 해석도 나온다. 전북 남원공장을 비롯한 일부 생산 거점도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부서 통폐합 등 인력 구조조정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격변기 때 리더십 부재”격변기 리더십 부재도 LG생활건강 실적 부진의 원인이란 분석이다. LG생활건강은 차 전 부회장이 18년간 회사를 이끌 당시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썼다. LG생활건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차 전 부회장이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해 2인자를 키우지 못했다”며 “2022년 이정애 대표가 신임 대표가 된 후 전 세계적인 뷰티 환경이 격변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은 구조조정을 통해 본업인 화장품 경쟁력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단기적인 재무개선 차원을 넘어 그룹사 전체의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음료 사업 매각을 통해 확보한 수천억원의 현금을 화장품 브랜드 인수, 해외 유통망 확충, 디지털 전환 투자 등 성장 동력 마련에 재투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사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여러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코카콜라음료 매각과 관련해 공식적이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이선아/최다은/고윤상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