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형택 한국경제신문 기자
“국내 투자자, 기업가, 실무자들이 팔란티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과장된 정보가 온라인을 휩쓸고 다니기 때문이죠. 팔란티어를 직접 겪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단행본 ‘팔란티어 시대가 온다’를 쓴 변우철 KT 본부장은 국내 유일무이한 ‘팔란티어 전문가’로 통한다. ‘철통 보안’으로 잘 알려진 팔란티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본 인물이어서다. 그는 두산인프라코어 부장 시절 국내 최초로 팔란티어 시스템 전사 도입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대기업 현장에 실제 팔란티어 솔루션을 구축했다.
이후 DL이앤씨에서 건설·엔지니어링 분야에 팔란티어 솔루션을 재도입,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이는 한 인물이 국내 대기업 두 곳에 팔란티어를 직접 구축한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4년부터 KT에 몸담으며 팔란티어 프리미엄 파트너 체계와 생태계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그가 팔란티어를 해부하는 책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에 퍼진 팔란티어 관련 콘텐츠들이 잘못된 정보로만 가득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변 본부장은 “최근 주가 급등으로 팔란티어에 관심이 많아지자 이를 다룬 유튜브와 블로그 등이 많아졌다”며 “내부자의 입장에서 보니 대부분의 콘텐츠가 과장됐으며 잘못된 정보도 너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로 ‘팔란티어의 보안성’을 꼽았다. “팔란티어는 보안에 극도로 예민한 회사이기에 노출된 자료가 모두 외부자 관점일 수밖에 없다”며 “국내에서 팔란티어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들여다 본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해 집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팔란티어가 온다’는 세 부류의 가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 팔란티어에 투자하고자 하는 투자자, 팔란티어를 도입하려고 고민하는 기획자, 의사결정하는 관리자 모두의 궁금증을 긁어주기 위해 책을 구성했다.
팔란티어는 2001년 벌어졌던 9·11테러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변 본부장은 “9·11 테러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에 분노한 두 청년 피터 틸과 앨릭스 카프가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기업을 만들자’는 사명으로 창업에 나섰다”며 “팔란티어라는 사명도 영화 ‘반지의 제왕’ 속 멀리 보는 구술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했다. 멀리 보며 테러 등 위협을 막고 안전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팔란티어가 AI와 데이터 산업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근본적인 원인으로 ‘온톨로지’를 꼽았다. 팔란티어는 조직 내부의 다양한 데이터와 실제 세계의 사물·개념을 연결한다는 의미로 온톨로지라는 철학적 용어를 채택했다. 스탠퍼드대 로스쿨 졸업 후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카프의 철학도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단어다.
변 본부장은 “경쟁사들은 챗봇, 리포트 요약, 번역 등 1차원적인 인공지능(AI)만 만드는데 팔란티어는 ‘실제 업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완벽히 다르다”며 “온톨로지라는 가상 영역에서 실제 업무를 아예 대행할 수 있다는 점이 팔란티어의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공간에서 데이터를 보고, AI로 판단하고, 그 즉시 실행까지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팔란티어 AI의 특징을 ‘실행 가능한 AI’로 정의했다. “경쟁사는 데이터 분석, 판단, 실행의 모든 과정이 단절된 형태로 이뤄지는데 팔란티어는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모든 게 끝난다”며 “AI는 그 과정에서 추가 데이터를 학습하며 다음 행동도 제안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기업의 판매 물품 재고가 부족하다면 AI가 재고 현황 데이터를 분석한 뒤 발주를 제안하고 인간이 현실에서 행동할 필요 없이 발주까지 넣어준다. 직접 담당자가 발주라는 ‘실제 행동’을 해야만 했던 기존 플랫폼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변 본부장은 국내 투자자들이 ‘팔란티어의 정체성’에 대해 각자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데이터 플랫폼, 전사적자원관리(ERP), AI 플랫폼 등 모두 다르게 팔란티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팔란티어 전문가 변 본부장이 정의한 팔란티어는 ‘올인원 솔루션’이다. 그는 “이용자마다 직면한 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 문제를 해결해주면 데이터 플랫폼처럼 생각하고 AI를 경험하면 AI 플랫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팔란티어는 모든 영역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올인원 문제해결 도구’다"라고 설명했다.
변 본부장은 국내 기업 3곳에 팔란티어 도입을 경험한 인물인 만큼 내부 저항에도 수없이 부딪혔다. “7년 동안 단 하루도 공격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다. 그는 “국내 기업에 팔란티어 도입을 시도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데이터 성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조직, 팀 간 데이터 공유가 안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서마다 정보에 대한 독점욕이 있기에 전사적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팔란티어의 도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기업이 팔란티어를 ‘어항 속의 물고기’로 가둬두려 한다고 지적했다. 부서들이 데이터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팔란티어를 한정된 업무 영역에만 쓰려 한다는 것이다. 변 본부장은 “기업들은 문제가 생기면 매번 과거의 경험에 입각해서 해결책을 도출하려 하는데 그건 ‘틀린 방식’이다”며 “팔란티어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무엇보다 객관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변 본부장은 팔란티어 도입의 투자 대비 효과(ROI)를 높이기 위해서는 “솔루션을 휴대폰 요금제처럼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말했다. “도입 비용이 적지 않은 팔란티어를 100% 활용하려면 최대한 많이 써야 한다”며 “쓰는 만큼 과금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량에 관계없이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는 ‘엔터프라이즈 계약’으로 도입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영역에서만 쓰는 것과 전체 인원이 쓰는 건 합리성의 차원이 다르다”며 “도입 비용의 벽이 있더라도 모든 영역과 조직에서 온톨로지를 사용한다면 ROI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모두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변 본부장은 “4500명의 임직원이 있던 이전 회사에서는 팔란티어 도입 초기 월 100명밖에 쓰지 않았지만 1년 만에 월 이용자를 1850명까지 늘렸다”며 “전사에서 20%가 매일 쓰는 시스템이 되자 도입 비용보다 3~4배 이상 운영비용을 줄여 효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팔란티어는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파견 엔지니어를 기업에 무조건 보낸다”며 “실제 고객과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고객 관점에서 문제를 푸는 회사다”라고 했다. 팔란티어는 온톨로지를 마치 ‘모듈러 주택’ 혹은 ‘레고 블록’처럼 여긴다. 초심자들에게 단순 블록만 던져준 뒤 완성을 바라면 안 되는 데다 간단한 가이드라인 혹은 안내자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변 본부장은 “기업의 문제 푸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바로 파견 엔지니어의 중요한 역할”이라면서도 “팔란티어도 이들을 무한으로 채용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 현재 팔란티어가 보유한 엔지니어의 수는 3700여 명 정도다. 회사가 급성장했음에도 2019년 1800여 명에서 엔지니어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 대신 ‘아폴로’라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AI 등을 이용해 운영체제 업데이트 등 엔지니어의 역할을 대체해주는 도구다.
변 본부장은 “팔란티어는 AI를 이용해 코딩, 로직 구현 등 간단한 업무를 하게 만들었다”며 “인간 엔지니어에게 주요 역할에만 집중하고 본질적 의사결정을 하게 도와주는 셈”이라고 했다. 실제 카프 CEO는 올 2분기 어닝콜에서 “2035년까지 회사를 지금보다 1000배 키우겠다”면서도 “AI를 키워 인간 엔지니어의 수는 줄일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지희 한국경제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