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52>
며칠 전 주말 한강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무더운 날씨를 주체하지 못하고 강바람을 찾아 나선 것. 음식을 주문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옆 테이블에 중년의 외국인 여성이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시켜놓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국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어 말을 걸었다. 와인 종류는 무엇이고, 식사를 하면서 항상 와인을 주문하는지 물어봤다. 빠르게 돌아온 답변은 너무나 명쾌했다. “와인 없이 어떻게 저녁을 먹을 수 있나요. 이게 바로 내 고국, 프랑스 스타일이죠.”
와인은 나라별 또는 민족별 식문화에 따라 소비량에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구세계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 여러 나라 음식과는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와인은 식사와 함께 곁들이는 음식의 한 종류로 자리 잡았다.
그와 함께 와인 양조의 오랜 역사와 전통 역시 일반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생산량 증가와 마케팅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이룬 신세계 국가(미국, 호주, 칠레 등)들 역시 와인 소비량은 지속적인 증가세가 예상된다.
실제 작년 한 해 1인당 와인 소비량 1위는 포르투갈이다(국제와인기구(OIV) 통계자료). 총 81병(750mL 한 병 기준)을 마셨다. 이어 이탈리아(57병)와 프랑스(55병), 스위스(40병) 순으로 나타났다. 유럽이 압도적으로 많다. 국가별 총량에서는 미국이 33억 L로 선두를 차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와인 소비량은 2병 정도. 포르투갈의 2.5%에 불과하다. 이처럼 수치가 낮은 이유 첫 번째는 와인이 외국 술이기 때문이다. 된장이나 고추장, 마늘 등 양념이 강한 한국 음식문화와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특히 한 상 가득 차려놓고 급히 먹는 식습관도 와인 소비에 걸림돌이다. 야채와 생선, 고기가 한꺼번에 나와 마시는 타이밍을 잡기도 곤란하다. 더구나 와인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마시는 슬로 푸드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삽겹살과 소주’, ‘치킨과 맥주’ 등 오랜 기간 형성된 우리 음식문화 속에서 와인의 역사는 일천하다. 1987년 이전까지는 양주 수입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와인 시장도 형성된다.
와인 대중화를 막는 또 다른 원인으로 비싼 가격과 복잡한 유통구조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와인의 가격은 생산국에 비해 턱없이 비싸기 마련이다. 또한 온라인 판매 제한 등으로 가격이 불투명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한다.
국세청 고시에 따르면 전통주를 제외하고 주류의 통신판매는 금지다. 홈페이지에 결제 방법이나 계좌, 전화번호 등 판매 관련 정보 기재를 금지하고 있다. 다행히 2020년 4월부터 앱을 통한 ‘스마트 오더’가 허용됐다. 그러나 최소한 한 번은 매장에 방문해야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와인을 불법적으로 ‘택배 판매’하는 수입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 국내 한 인터넷 매체에서는 “나라셀라와 아영FBC가 서울대, 연세대 총동문회를 통해 와인을 불법적으로 택배 판매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외환 위기 등 몇 차례 굴곡이 있었으나 2000년 이후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조급한 사회 분위기가 안정되면서 국내 와인 시장도 자리 잡았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수입 물량이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고 있다.
김준철 와인스쿨 원장은 “우리나라 음식은 맵고 짠맛이 강하다. 와인이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소주는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주류 유통시스템이 젊은층 중심으로 개선되고 와인 본고장의 음식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와인을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소비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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