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27일 10:2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트럼프 2.0 시대 속 미국의 정책 변화가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미국 정책과 규제 변화는 한국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는 한국 기업의 세무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법안이 발효되었다. 미국 독립기념일, 트럼프 대통령 OBBBA 법안 서명과 즉시 발효트럼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을 맞아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에 서명했고, 법안은 즉시 효력을 발휘했다. OBBBA는 트럼프 2기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을 담은 조세·지출 법안으로, 2017년 트럼프 1기 시절부터 추진된 ‘트럼프 감세’ 정책 기조를 연장하는 성격을 지닌다. 동시에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유인하는 다양한 세제 조치가 포함됐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IRA(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비롯한 친환경 정책은 대폭 축소되었다. 한편 많은 우려를 낳았던 글로벌 최저한세(Pillar 2) 도입 국가 투자자에 대한 Section 899(보복세) 신설 조항은 최종적으로 철회되어 국제적 조세 갈등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기업 투자 유인 강화… 청정에너지 세제 혜택은 조기 일몰OBBBA에 담긴 주요 세법 개정 가운데 크게 세 가지가 주목된다.
첫째, 전기차 세액공제와 태양광·풍력 발전 생산세액공제, 투자세액공제와 같은 주요 청정에너지 관련 세제 혜택의 조기 종료다.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 구매에 대해 부여되던 세액공제(Section 30D / 45W)는 2025 년 9 월 30 일 이후 구매분부터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 미국 내 투자 촉진과 경쟁력 강화 조치다. 이자비용 공제 한도 산정 기준을 EBIT(이자·세금 차감 전 영업이익)에서 EBITDA(이자·세금·상각 전 영업이익)로 변경해 제조업 중심 기업의 세제 부담을 완화했고, 적격 자산에 대한 100% 일시상각(Bonus Depreciation)을 재도입했다. 또한 미국 내 R&D 비용 자본화 요건을 폐지해 연구개발 활동의 세무상 부담을 덜어주었다.
셋째, 국제조세 제도의 일부 개정이다. 트럼프 1기 때 도입된 GILTI(Global Intangible Low-Taxed Income), FDII(Foreign-Derived Intangible Income), BEAT(Base Erosion and Anti-Abuse Tax) 제도의 일부 조정으로 대상소득의 범위와 유효세율이 달라졌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 전략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반도체 등 첨단제조 세액공제율 25% → 35% 상향특히 반도체와 첨단 제조 분야에 대한 세액공제가 확대되었다. 기존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른 투자시설 세액공제율은 25%에서 35%로 상향되었으며(Section 48D), 이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를 강력히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아울러 미국 내에서 반도체 등 첨단 제조시설 운영에 필수적인 자산에 대한 투자액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세액공제가 허용된다.
또한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Section 45X)를 통해 특정 적격 부품의 미국 내 생산·판매에 세액공제가 허용된다. 이때 적격 부품에는 풍력, 배터리, 태양광 부품뿐 아니라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도 포함돼 있어 한국 기업의 공급망 전략과 직결된다. 한국 기업의 영향 ? 리스크와 기회의 공존OBBBA 발효가 한국 기업에 주는 영향은 위협과 기회의 양면성을 지닌다.
먼저, 전기차 및 청정에너지 산업은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세액공제 조기 종료는 해당 산업의 수익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전방 수요 위축으로 인해 이차전지·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연관 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세제 혜택 종료 전 설비투자와 생산시설 구축을 서둘러 단기 혜택을 극대화해야 한다. 동시에 주(州) 정부와 지역 단위의 보조금 및 투자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등 장기적으로 손실을 최소화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면, 제조업 중심의 한국 기업에는 전반적으로 유리한 세제 환경이 조성된다. 신규 공장 설립이나 CAPEX 확대 시, 적격자산과 R&D 비용을 즉시 비용 처리할 수 있어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이자비용 공제 기준이 EBIT(이자·세금 차감 전 영업이익)에서 EBITDA(이자·세금·상각 전 영업이익)로 변경되면서 감가상각비가 큰 제조기업의 이자 공제 범위도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미국 내 제조시설이나 R&D 거점이 없는 한국 기업은 이러한 혜택에서 소외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세 부담 증가와 원가 경쟁력 약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내 제조기반 확충과 연구개발 거점 확보는 선택이 아닌 전략적 필수로 다가오고 있다. 공급망 리스크와 ‘탈중국화’의 기회OBBBA는 ‘금지외국기관(PFE, Prohibited Foreign Entity)’ 규정을 신설했다. 해당 기관 또는 이들과 일정 비율 이상 원자재를 거래하는 기업은 미국 내 세액공제 혜택이 제한된다. 이는 중국 등 특정 국가와 밀접한 공급망을 가진 기업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탈중국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입지 강화라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시장에서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될수록, 한국 기업은 전략적 대체 공급망 파트너로 부상할 수 있다. 글로벌 사업 구조 재편을 통한 대응 필요트럼프 2기 시대에 들어선 지금, 한국 기업은 변화하는 미국 조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 절세 차원을 넘어선 근본적 사업 구조 재편을 모색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무형자산(IP) 관리 전략을 정교화하며 한국 본사와 미국 법인의 세무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에서 성장한 다국적기업(MNC)은 미국 법인을 글로벌 사업 운영의 핵심 거점으로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세무 전략과 공급망 전략을 긴밀히 결합한다면, 이번 세법 개정은 한국 기업에게 위기가 아닌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