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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한지 채 3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낯선 광경들이 종종 눈에 띈다. 행정가 출신답게 전국을 누비며 민원을 듣고 해결하는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수석보좌관회의를 비롯한 각종 정부 회의를 언론에 공개하는 새 정부의 자신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새 정부가 디지털자산 산업에 대해 어떠한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할 것인지, 또한 정책 추진의 속도감은 어떠할 것인지 내심 기대가 컸다.
지난 8월 22일, 드디어 정부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기술선도 성장, 모두의 성장, 공정한 성장, 지속성장 기반 강화라는 세부 항목으로 이루어진 총 68페이지의 보고서에는 그러나 디지털자산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 등장하였다. “디지털자산 규율체계 마련 및 현물 ETF 제도화.” 명확한 문구이나 그 외 어떠한 배경 설명도, 추구하는 목표도 부연되어 있지 않아 이 짧은 문구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막막한 국내 금융사...불확실성 속에서 기존 제도 더듬어기업은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도태된다. 그래서 치열하게 성장하고자 하는 기업 뿐 아니라 다만 살아남고자 하는 기업조차도,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예상하여 변화하는 시장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를 쓴다.
구체적으로 내년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당장 올해 하반기에는 사업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수립하여야 내년에 실제로 해당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2025년 상반기에는 모두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사용을 이야기하였다. 그렇지만 실상은 4대 금융지주 산하의 은행들도, 네이버, 카카오, 토스와 같은 핀테크사도, 국내 굴지의 카드사와 증권사도 사실은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예를 들어 보자.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은행은 발행한 코인을 직접 보관할 수 있는가. 은행은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수 있는가.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을 취급하려는 전자금융업자들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별도로 하여야 하는가. 스테이블코인이 선불전자지급수단과 유사하다고 하면서도 현재 선불전자지급수단에는 적용되지 않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른 자기 발행 코인 거래금지 규정을 스테이블코인에는 적용할 것인가.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로 가상자산을 구매할 수 없다는 규정은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되면 개정될 수 있는가. 정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발행만을 허용할 예정인가 아니면 외화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발행도 허용할 것인가. 다 적지 못할만큼 많은 질문들이 시장에 가득한데 확실한 답을 주는 곳도, 물어볼 수 있는 곳도 아직은 없어 보인다. 우리 기업들은 불확실한 제도를 더듬어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신규 사업을 준비하고 있고, 그 부담과 리스크는 안타까울 정도이다. 기업 불확실성 줄여주는 美그렇다면 우리보다 조금 일찍 새 정부를 맞이한 미국의 상황은 어떠할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디지털자산 산업을 미국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당일 디지털자산 제도화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지난 7월 31일 드디어 위 행정명령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발표하였다.
미국 백악관의 “디지털자산 시장 대통령 직속 실무그룹”(PWG) 명의로 작성되고 「디지털금융 기술에 있어 미국의 리더쉽 강화 」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보고서는 무려 166페이지에 달하는데, 디지털자산 생태계와 시장 구조를 기본 개념부터 촘촘히 설명하면서, 광범위한 부문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한 과제와 이에 대한 권고안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크게 뱅킹과 디지털자산(Banking and Digital Assets), 스테이블코인과 지급(Stablecoin and Payments), 불법자금 조달(Countering Illicit Finance), 세금(Taxation)으로 나뉘며, 방대한 내용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으므로 뱅킹의 경우를 예시로 살펴보겠다.
먼저 위 보고서는 과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은행 감독기관들의 규제방향을 “Operation Choke Point 2.0”으로 명명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정책이 추진되어서는 안 되며 암호화폐 기술은 결제, 송금, 자산관리 등 은행의 비즈니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은행 감독기관들에 대하여 은행 대상으로 발간하는 가이드라인 등에 암호화폐 관련 업종을 일률적으로 ‘고위험’으로 간주하는 표현을 지양하도록 권고하면서, 기술 변화가 활동의 위험 프로파일을 반드시 바꾸는 것은 아니므로 은행은 사전 규제승인 없이도 안전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허용된 디지털 자산 활동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명확하게 정부의 입장을 설명한 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권고안”을 제시한다. ①은행의 디지털자산 커스터디에 대한 실무 모범사례(best practices) 제시, ②제3자를 활용한 디지털자산 서비스 제공 관련 지침 제공, ③스테이블코인 준비금 예치 관련 추가지침 제공, ④은행이 디지털자산을 대차대조표에 보유할 수 있는지 여부와 그에 따른 안전성 및 건전성 우려 명확화, ⑤디지털자산 관련 실험 참여 허용, ⑥자산의 토큰화 관련 위험기반 가이드라인 마련 등인데, 특히 자본 규제 관련하여 현재 마련된 BCBS 가상자산 익스포저 자본·유동성 기준(이하 “바젤 기준”)이 지나치게 강화되어 있으므로 실제 위험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미국이 앞장서서 바젤 기준의 재검토를 국제적으로 촉구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사업환경의 예측가능성'이 국가경쟁력 이 보고서를 읽은 미국의 은행들은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이해하고 향후 이루어질 제도개선 사항을 예상할 수 있으므로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예견가능성이다. 아직은 구체적인 제도로 구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책 방향을 미리 제시하고 산업이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하여야 하는 역할이고, 정부의 방향 제시에 따라 기업들이 미래 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때 산업은 성장하고 국가의 경쟁력이 확보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비하여 분별있고 안정적인 디지털자산 정책 방향을 지향할 수 있고, 그 방향은 그것대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 방향이 큰 틀에서 육성인지 제한인지, 금융기관은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지, 디지털자산업자는 어느 범위의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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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미래금융전략센터(센터장: 한준성 고문)는 2024년 5월 출범하여, 금융권 디지털 혁신 가속화와 금융 기술 발전에 발맞춰 가상자산·전자금융·규제 대응·정보보호 등 금융 및 IT 분야 최정예 전문가들로 진용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