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공의 복귀 앞두고 긴장감 감도는 의료 현장

입력 2025-08-26 17:26
수정 2025-08-27 00:17
“동료를 인격적으로 비난하고 환자 인권을 무시했던 전공의와 다시 같이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수도권 수련병원의 한 교수는 26일 전공의 복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음주 사직 전공의 집단 복귀를 앞두고 의료계 내부 갈등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일부 전공의는 복귀 조건으로 당직 제외, 당직 후 비번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병원·교수 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 강경파 전공의를 받게 된 병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대정부 투쟁을 주도한 박단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복귀를 놓고 찬반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복귀한 전공의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 1년6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중증·희소병 환자는 치료 공백에 내몰렸다. 항암제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치료를 이어가는 ‘가방 항암’에 의존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일부 전공의는 현장에 남은 의료진의 신상을 담은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했다. 의사 커뮤니티에는 응급실에서 계속 환자를 본다는 이유로 동료를 ‘부역자’라 부르고, 응급 환자들이 더 죽어야 한다는 악담성 글이 쏟아졌다. 병원으로 돌아가면 의료 현장에 남아 있던 전공의들에게 보복하겠다는 글이 올라와 교육부가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지금도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직 전공의 채팅방에는 ‘감귤’ ‘X수’ 등 먼저 복귀한 동료 전공의와 수련병원 교수를 비하하는 표현이 오간다.

의료 공백을 메운 진료지원(PA) 간호사와 복귀 전공의 간에 업무 영역을 놓고 갈등이 생길 소지도 있다. 대형 병원은 의정 갈등을 겪으며 수술 부위 봉합, 튜브 삽관 등 의사 업무 일부를 담당하는 PA 간호사를 대거 채용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전국에서 활동 중인 PA 간호사는 1만8258명에 이른다. 삼성서울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은 PA 간호사와 전공의 역할을 구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 갈등은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현장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를 병원 자율에만 맡기지 말고 의료 정상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교수와 기존 복귀 전공의를 겨냥한 보복 행위를 방지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PA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명확히 하도록 세부 시행규칙을 제정해야 한다. 환자를 버리고 의료 현장을 등진 전공의들이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