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안보와 경제에 기초한 글로벌 격변의 시대이다. 대한민국은 다시금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산업보국(産業報國)’의 길을 고민해야 한다. 1990년대 외환위기와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그리고 지금의 미·중 기술 패권 경쟁까지 우리 산업과 안보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단순한 성장이나 수출 확대만으로는 극복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기술 확보와 인재 양성 그리고 국방 안보와 에너지 등 사회 전반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 첨단산업은 초격차 유지가 관건이다. 대한민국은 반도체, 배터리를 기초하여 K-방산 등 일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기술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고, 미국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우리에게 새로운 위협이자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AI와 양자컴퓨터,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이다. 또한 제조업 기반 국가로서 K-방산에 따른 소재·부품·장비 운영의 자립화를 위한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 시스템을 더 깊이 추진하고, 미래형 제조 생태계로의 전환을 이끌어 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인재에 국가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산업을 움직이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 이공계 기피 현상과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는 산업 구조적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공계 인재 양성, 직업교육 혁신, 평생학습 체계 구축 등 인재 양성을 위한 장기적인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과 사회적 안전망 확보를 통해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과학기술 기반의 국방력 강화를 해야 한다. 부국강병의 ‘강병(强兵)’은 현대전에 맞는 국방력을 의미한다. 단순 병력 규모보다는 드론, AI, 사이버전, 우주기술 등 비대칭 전력의 확보가 핵심이다. 동시에 K-방산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여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최근 중동 및 유럽에서 한국산 무기의 신뢰도가 상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와 탄소중립,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제 해결이다. 산업보국을 지속하려면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이라는 두 가지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수소에너지 등 에너지 믹스 전략을 균형 있게 추진하며,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친환경 기술 도입도 가속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수출 경쟁력과 직결된 과제이다.
경제와 국방이 아무리 강해도 사회가 분열되고 청년이 미래를 체감하지 못하면 지속가능한 국가는 어렵다. 고용 창출,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안전망 강화는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자동화, 디지털화, 이민 정책 등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통해 가난을 극복했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상황은 과거의 성공 방식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을 요구한다. ‘부국강병’은 단순히 국방력을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경제력·기술력·사회적 신뢰를 모두 포함하는 종합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산업보국’ 또한 특정 산업을 통한 경제발전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민 모두가 혜택을 공유하는 산업 발전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대한민국이 산업화의 기적을 넘어 기술 주권과 산업 안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가전략을 수립할 시점이다. 정부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은 혁신의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며, 국민은 이를 지지하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는 다시 한번 ‘산업’이라는 기둥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 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경제적 도구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사회 통합,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삶을 담보하는 전략적 국가 자산이다. 바로 여기에 부국강병과 산업보국의 새로운 의미가 있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 (사단법인 대한지속가능경영협회 이사, 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