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컬렉터들이 반듯하고 예쁜 회화만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시오타 치하루에게 마음을 뺏긴 모습을 보면 그렇다.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시오타의 작품을 보기 위해 평창동이 북적이고 있다.
얽히고설킨 까만 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거대한 공간을 뒤덮는다. 오랜 세월 땅에 뿌리내린 고목이 하늘을 향해 난 가지처럼 보이는가 하면, 몸속에 흐르는 혈관이나 신경세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설치가 아니라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을 잇는 직조 행위다. 씨실과 날실을 맞춰 옷감을 짜듯 연결 고리를 맺고 삶을 이어가며 역사를 엮어가는 게 사람의 삶이라 생각한다면 그럴싸하다.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 자아와 타자의 연결을 시각화해온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작품의 이름은 ‘Return to Earth’(2025). 작품의 명징한 제목처럼, 천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검은 실들이 바닥에 쌓인 흙더미와 만난다. 인간이 자연에서 비롯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개념을 시각화한 것으로, ‘인간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작가만의 해답이다.
1996년 설치 작품 ‘Direction of Consciousness’에서 작품의 개념을 구상한 작가는 약 30년의 사유를 통해 자연의 일부로 인간을 위치시키는 순환적 사고를 발견해냈다.
붓과 물감 대신 실로 그림을 그려온 일본의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 <Return to Earth>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시오타의 세 번째 한국 개인전으로, 지난해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의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등 최근작부터 젊은 시절 그린 유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지난 7월 말 전시 개막 전부터 상당수 작품이 판매될 정도로 컬렉터의 관심을 끌었다. 아파트에 주로 사는 한국 거주 문화 특성상 부피감이 큰 설치 작품이 인기 없다는 통념과 달리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앞두고 총알을 장전하고 있을 컬렉터들이 일찌감치 지갑을 열었단 얘기다. 그만큼 삶과 죽음을 다루는 시오타의 예술 세계가 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공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오타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그의 지난 생을 알아야 한다. 교토 세이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함부르크 조형대학과 베를린 예술대학 등 독일에서 유학한 시오타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실존적 고민에 빠졌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시오타는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고, 시어머니가 담가준 김치를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며 웃어넘긴다. 하지만 두 번의 암 투병으로 생사를 오갔고, 항암 치료로 고통받았으며, 유산까지 겪었다. 누구보다 죽음에 다가섰던 그는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기억을 답으로 찾았다. 유한한 육체가 소멸할지언정,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기억과 의식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암은 끝을 암시하는 듯한 침묵과 함께 찾아왔다. 그리고 아이를 잃었다. 임신 6개월 차의 사산.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밖으로 나갈 수도, 세상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나는 진정 내 삶이 끝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고통과 치유의 기억을 담아내는 예술 방식으로 실을 택한 건 필연적이다. 사람이 애착을 두고 사용하던 물건에 사람의 기억이 담긴다는 생각에서 시오타는 사물에 주목했고, 불현듯 실을 집어 들게 됐다. 실제로 시오타 하면 떠오르는 건 붉은 실을 칭칭 감아 만든 작업들이다. 붉은 실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 남녀의 사랑 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연을 상징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Nokon kjem til a komme(누군가가 올 것이다)’다. 무채색의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놓인 구조물에 유독 선명하게 빨간 실이 연결돼 있다. 이 작품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동명 작품에서 이름을 따왔다. 욘 포세를 20년 넘게 연구해온 시오타의 막역한 친구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친구가 사랑했던 포세의 희곡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침묵과 공백의 공간을 파고드는 실을 통해 시오타와 친구를 잇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선보인 ‘The Self in Others’(2024) 시리즈에도 붉은 실이 칭칭 감겼다. 병원이나 해부학 책에 나오는 인체 모형이 붉은 실과 검은 실을 뒤집어쓴 형상이다. 분명 사람과 동일한 형태의 신체 구조를 지녔지만, 당연스럽게도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감각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일본을 떠나 타국에서 활동하며 이방인처럼 사는 자신의 존재가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 스스로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는 그런 감각을 형상화했다. 여기서도 작가는 실과 사람의 모습을 통해 기억의 영속성을 강조한다. 작품 한쪽에는 분리된 신체의 파편을 담은 조각들을 설치했는데, 이는 육체의 단절 속에서도 나를 구성하는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상징한다. 즉 개인은 관계에 따라 매 순간 재형성되지만, 정체성과 자아는 그대로란 뜻이다.
‘Cell’(2025) 연작은 2017년 암이 재발한 후 항암 치료를 받으며 죽음과 마주했던 시오타의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다. ‘Cell’은 생명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다. 그리고 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암으로 변한다. 이 짧은 사실에서 시오타는 생명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사유했다고 한다. 작품은 마치 심장 등 인간의 장기를 연상시키는데, 작품에 사용한 유리와 철사는 단단해 보이지만 열이나 압력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유연한 재료라는 게 재밌다. 이를 통해 시오타는 고통 속에서도 재생과 순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세포로 상징되는 생명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파괴와 생성이 반복되는 하나의 순환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탄생은 시작이 아니고, 죽음도 끝이 아닌 새로운 생성을 향한 전환점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Landscape’(1992) 연작이다. 대학 시절 제작한 시오타의 초기 회화 작품이다. 현재 5점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 중 3점이 걸렸다. 이 회화는 시오타가 설치와 조각에 눈을 돌리는 시발점이 됐다. 회화에 재능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시오타의 예술 세계가 새롭게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실험적 작업 방식을 구사해 자신이 느낀 감각을 오롯이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붉고 검은 실을 사용해 완성한 그의 걸작들이 이 실패한 유화에서 나온 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시오타는 이렇게 말했다. “유화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모방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림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멈춰야겠다’ 싶었죠. 이 전시는 내가 왜 회화를 멈췄고, 실로 전환했는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그린 유화도 공개했습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