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연준 흔들기'…전 세계 중앙은행에 걱정거리로

입력 2025-08-25 20:00
수정 2025-08-2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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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강력한 독립성을 자부해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흔들리는 것을 지켜본 전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이라는 폭풍의 불똥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재편하고 금리 인하를 관철시키기 위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집요하게 공격해온데 이어 연준의 7인 이사중 하나인 리사 쿡 이사도 축출하려고 시도중이다.

연준이 이 압력에 굴복할 경우 유럽과 일본 등 전세계 중앙은행에 위험한 선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가 와이오밍주 잭슨홀 회의에 참석한 전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인터뷰한데 따르면, 이들은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인플레이션 대처 능력을 떨어 뜨리고 경제 안정에도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연준이 정치에 흔들리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생명선인 미국채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면 투자자들이 미국채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고(=채권 가격 하락) 금융 시장에 큰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일부 국가의 중앙은행은 이미 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흔들리는 여파에 대비해 은행 등 대출 기관에 미국 달러에 대한 노출에 주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통제 능력이 약해질 경우 달러는 약세를 향할 것이라는 전망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핀란드 출신의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인 올리 레인은 “연준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유럽 등 전 세계에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으로, 연준이 정치적 압박에 항복한다는 것은 최소한 40년전 폴 볼커 의장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물리친 이후 지속되어온 연준의 독립성이라는 권위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폴 볼커 이후로 전세계의 중앙은행들이 대부분 정치적 독립성과 자신의 임무에만 집중하는 모델을 따라왔다. 대부분은 목표 인플레이션을 2% 정도로 유지해왔다.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이사회 위원이기도 한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 총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물가 안정의 필수 조건임을 분명히 해야 하며 독립성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시장은 트럼프의 공격에도 연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았다. 미국 증시는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연준의 신뢰도가 위태로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국채 수익률이나 인플레이션 기대치의 급등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의 임기가 5월에 끝나면서 새 의장을 지명할 수 있다.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금리 정책을 수행할 위원들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의원을 내보낼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12개 지역 연준 이사회의 수장들이 돌아가며 금리 정책에 대한 투표를 하는 연준의 금리 결정 과정도 연준이 워싱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견제 수단이지만 지역 연준 역시 트럼프가 공세를 벌이지 않을지는 불확실하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움직임은 전 세계 정부, 특히 포퓰리즘적 성향을 가진 정부들이 중앙은행에 대한 통제력을 주장하도록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시장은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자 국제통화기금(IMF)의 전 수석 경제학자인 모리 옵스트펠트는 "정부가 연준을 휘두르는 것은 다른 정부에 매우 나쁜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적 견제와 균형, 법치주의의 보루로 여겨졌던 미국에서도 일어난 일이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