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한민국에는 독거노인만 있다

입력 2025-08-24 17:50
수정 2025-08-25 00:15
급속한 고령화는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는 기피하고 싶은, 아니 눈 감고 싶은 사회 현상이다. 대한민국에서 노인이 된다는 건 고단한 일이다. 거리는 외면하고, 식당에서는 눈치 보고, 병원에선 보험 재정을 걱정하며 침묵해야 한다. “노인은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게 미덕이다.” 심지어는 “빨리 떠나주면 고맙다”는 인식조차 있다.

노인은 정말 짐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을 만들어낸 과거의 주인공들일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노인은 가족의 생존에 올인한 세대다. 그런데도 지금 이 사회는 그들에게 존중은 고사하고 “왜 너는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냐”고 묻는다. 노인 10명 중 1명이 기초생활수급자. 자살률 또한 1위다. 정작 국가와 제도는 이들이 일할 때 연금도, 보험도 제대로 갖춰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고 가족에게 노인은 어떤 의미일까? 정말 그들만의 책임인가? 그것은 묻는 쪽의 비겁함이자 회피다.

지금 노인을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 모두 언젠가는 그 자리에 갈 사람들이다. 노인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 안에 순환하는 세대의 모습이다. 결국 노인을 짐처럼 대하는 사회는 미래의 자신을 부정하는 사회다. 이 아이러니를 끊기 위해서는 인식과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주 ‘노인을 도와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정말 필요한 건 시혜나 구호의 복지가 아니라 ‘존중’이다. 그들이 가족을 지탱하고 사회를 만들고 자녀를 키우며 지역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 보상은 단순한 연금 몇 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당신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제도적 환대다.

이를 위해 국가와 사회는 다음과 같은 ‘보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노인 부양의 책임을 재정의해야 한다. 법적 부양 의무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가족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양을 국가가 대신하되 가족의 감정과 감사를 제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식, 예를 들어 가족돌봄급여, 주거연계 지원 등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인을 사회 속으로 다시 초대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복지관은 여가시설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이자 노인 재활용 플랫폼이 돼야 한다. 멘토링, 재능 기부, 지역 활동 등 사회 기여형 노인 일자리 체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노인의 고독을 줄이는 생활 설계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1인 가구 고령자를 위한 복지·주거·의료 통합형 공동주택 개발,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정서적 단절을 메우는 스마트 기술 보급 확대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한민국은 고령화 사회가 아니라 고립화 사회다. 우리에게는 노인을 품는 시스템이 없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정작 노인을 받아들일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가족은, 이 나라는, 이 사회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노인들에게 따뜻한 노후를 허락하지 않는가?” 정말 부끄러워야 할 사람은 준비 못 한 노인이 아니라 그들에게 준비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사회다. 가난한 노인을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노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노인이 사라지면 고맙겠다, 빨리 떠나줬으면 좋겠다는 사회는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는 따뜻한 미래가 없다. 우리는 어떤 노후를 원하고 그 미래를 위해 지금의 노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 물음의 대답이 바로, 지금 우리가 세워야 할 ‘현대적 효(孝)문화’의 품격이다. 멋진 장수사회는 시대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