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어느 때보다 협력 강화"…이시바 "양국 인식 공유 든든하다"

입력 2025-08-24 17:25
수정 2025-09-01 16:02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건 세계 안보 지형과 경제·통상 환경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판단에서다. 양국이 직면한 국제 정세를 감안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두 국가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인식했다는 의미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를 논의했지만 ‘공동언론발표문’에 이 사안을 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 인공지능(AI)부터 저출생까지 협력두 정상이 회담 이후 채택한 공동언론발표문은 정상 간 교류 및 전략적 인식 공유 강화, 미래산업 분야 협력 확대 및 공동 과제 대응, 인적 교류 확대, 한반도 평화와 북한 문제 협력, 역내 및 글로벌 협력 강화 등 다섯 가지를 골자로 한다. 한·일 정상이 만나 이 같은 문서 형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2008년 이후 17년 만이라고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전했다.

두 정상은 수소, AI 등 미래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민간 교류 확대를 위해 양국 간 워킹홀리데이 참여 횟수 상한을 기존 1회에서 2회로 늘리기로 했다. 안보와 관련해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에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담겼다. 다만 이시바 총리는 공동 발표 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 비핵화 조치 대상이 북한임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사회 분야 협력 방안도 구체화했다. 양국 정상은 저출생·고령화, 인구 감소, 지방 활성화, 수도권 인구 집중, 농업, 방제 등 양국 공통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 과거보다 미래 집중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 등 양국에 민감한 문제가 전면에서 논의되진 않았다. 이 대통령이 양국 간 미래 협력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현실적 판단을 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최근 북·러 간 군사 협력, 대만을 향한 중국의 군사 위협 등 역내 안보 지형이 변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한·일 및 한·미·일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날 두 정상은 회담 및 공동 언론 발표에서 한·일 양국, 한·미·일 3국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비슷한 입장을 가진 양국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시바 총리도 “양국을 둘러싼 전략 환경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양국 관계와 3국 공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 대통령과 이 점에 관해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 마음 든든하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미국의 통상 압박도 두 나라가 공통적으로 처한 대외 환경이다. 미국이 우방국에도 무차별 관세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제조업 기반 산업 구조가 비슷한 한국과 일본이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을 먼저 방문한 것도 이런 상황에 전략적으로 공조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 정상 만찬은 안동 찜닭·이시바식 카레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정상회담 이후 친교 만찬도 했다. 참모진이 모두 참석한 공식 만찬 외에 정상 내외만 자리한 별도 친교 시간도 보냈다. 소인수 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 열리는 등 두 정상 간 첫 셔틀외교는 시종일관 우호적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정상 만찬에는 이 대통령 고향인 경북 안동산 소주와 이시바 총리 고향인 돗토리현 맥주가 나란히 올랐다. 안동 찜닭과 한국식 장어구이에 김치를 고명으로 올린 메뉴도 나왔다. 이 대통령을 위한 오카야마산 백도도 곁들여졌다. 위 실장은 “만찬에 참석해보니 일본이 한국을 배려하려는 여러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시바 총리가 이 대통령 자서전 <그 꿈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를 가져와 사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만찬 이후 정상 내외만 참석한 친교는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이뤄졌다. 위 실장은 “정상 간 개인적 교분과 신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확대 정상회담 첫머리발언에서 “(이시바 총리를) 두 번째 뵙다 보니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여겨진다”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당초 20분으로 예정된 소인수 회담은 62분가량, 확대 정상회담은 51분간 열렸다.

도쿄=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