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임박하면서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가 속출하고 있다. 현대제철과 네이버의 하청 노조가 다음주 잇달아 원청 상대 투쟁 선포 행사를 연다. 더불어민주당은 25일까지 노란봉투법과 2차 상법 개정안을 차례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진짜 사장과 교섭하겠다”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하청업체 근로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현대제철 하청 노조)는 오는 25일 국회 앞에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한다. 현대제철 하청 노조는 이 자리에서 현대제철 측에 직접 교섭, 손해배상 청구 철회를 촉구할 예정이다. 국회에는 현대제철 경영진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사안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으며 내부 논의를 거쳐 대응 방안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청 노조가 원청에 임금·복지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는 전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는 원청인 네이버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집회를 27일 경기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 계획이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원청 기업이 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업무 전가와 휴일 도입 등 문제를 직접 해결하라고 주장했다.
LG전자 가전 유지·보수 자회사 근로자도 “진짜 사장인 LG전자와 교섭하겠다”며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고, 국내 주요 조선소 사업장 노조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도 지난달 HD현대·한화오션 등 원청에 공동 교섭을 촉구했다.
하청 노조의 이런 주장은 노란봉투법이 보장하는 핵심 내용이다. 노조법 2조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재정의한다. 직접적 계약관계가 없는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거나 파업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3조 개정안은 불법 파업 등 쟁의행위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 책임을 파업 참가자의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산정하도록 한다. 사실상 개인에 대한 손배소를 제한하는 것이다. ◇파업조장법 vs 평화촉진법더불어민주당은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 3법 개정을 마무리한 데 이어 23일부터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을 차례로 상정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상정 즉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에 들어가면 앞선 24시간 후 표결을 통해 강제 종료한 뒤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란봉투법 등은) 기업을 해외로 내쫓고 투자와 성장의 발목을 꺾어버릴 것”이라며 “이런 법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하려고 하는 민주당을 경제 내란 세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경제내란법 수정안 논의에 나서줄 것을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노란봉투법을 ‘파업조장법’이라고 지목했는데, 처리가 임박하자 공세 수위를 더 높인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산업 평화 촉진법’이라고 주장했다.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해 교섭 질서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1년 내내 교섭만 할 것”이라는 기업들의 우려와 관련해선 정부와 함께 충분한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복수 노조를 허용한 2011년에도 교섭창구가 쪼개지고 비용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로 문제를 해소했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은 노란봉투법 통과를 예상하고 대응 조치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공장 점거 파업을 벌인 하청 업체 노조원 대상 손해배상청구 3건(총 3억6000만원 규모)을 최근 취하했다. 현대제철도 지난 13일 46억원 규모의 비슷한 손해배상소송을 철회했다.
강현우/김진원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