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는 단순히 코로나19를 극복하지 못했거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약진으로 극장 수익이 급감한 정도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 30년간 양적 확대에만 치중한 결과 구조적 문제를 자초했으며 그 양적 확대가 결국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종의 공황 이론과 유사하다. 공급(극장)은 늘어나는데 수요(관객)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무너지고, 산업 자체가 파산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답습하고 있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5200만 인구의 한국 시장은 3200개 극장, 월간 이용자 1500만 명을 보유한 넷플릭스, 1000만 관중을 넘긴 프로야구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 한정된 이용자층을 나눠 갖고 있다. 단순한 셈법을 적용해 보자. 영화 한 편당 평균 제작비가 80억원이고, 연간 100편이 제작된다면 전체 시장 규모는 8000억원이다. 극장 티켓 가격이 장당 1만5000원이고, 인구 5200만 명이 1인당 연평균 세 편의 영화를 본다고 가정하면 총매출은 2조3400억원이 된다.
하지만 이를 ‘극장 대 비(非)극장’ 5 대 5 비율로 나누면 극장 매출은 1조1700억원, 다시 이 금액을 비극장 영역의 주체인 ‘배급사 대 제작사’ 5 대 5 비율로 나누면 영화 제작사 몫은 5850억원에 그친다. 이처럼 영화 제작사가 애초부터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 영화 시장은 30년 전부터 이런 구조적 불안정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손해 보는 시장에서 부익부 빈익빈 싸움이 벌어졌고 한편에서는 수백억원짜리 영화를 만들어 시장을 독점하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을 취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제작 편수는 25편으로 급감했고, 작품의 질은 엉망으로 떨어졌다. 관객은 한국 영화를 찾지 않고, 제작자는 한국 영화를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지 않는 빈곤의 악순환이 거듭됐다. 코로나19 이전부터 한국 영화는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영화인 스스로 그 판을 바꾸고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 코로나19라는 치명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결정타는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달리는 최근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나왔다. 한국 소재와 캐릭터, 로케이션을 담은 이 장편 애니메이션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작사가 일본계 미국 회사인 소니이고, 투자사가 넷플릭스다. 한국과 K팝의 글로벌 인기가 매일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는 상황에서 정작 한국 영화제작산업이 나락으로 치닫는 모순적 현실을 급속하게 노정하고 만 것이다.
지금은 판을 키우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영화계로서는 국내 수입이 반 토막 이상 난 현실에서 제작비 감당을 위해 새로운 시장, 즉 글로벌 마켓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한국 제작자들이 기획 개발부터 제작비, 후반 작업, 개봉까지 전 과정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프로그램, 곧 국제 공동제작 펀드 조성이 절실하다. 프랑스의 국립영화센터(CNC)가 자국 프로듀서에게 국제 공동제작비를 지원해 프로젝트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CNC의 지원 제도는 우리가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미 한국 영화 기획 개발, 제작 지원, 로케이션 인센티브, 후반 작업 지원, 개봉 지원의 5단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 공동제작 프로젝트에 예산을 배정하고 지원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