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0년간 편지로 나눈 두 신경과학자의 우정

입력 2025-08-22 16:23
수정 2025-08-22 23:55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이다. 반면 눈 안쪽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망막은 납작하다. 이 간극을 해결하는 건 뇌다. 2차원의 정보로 3차원의 입체를 만들어내고 해석한다. 신경생물학자 수전 배리는 어려서부터 사시로 인해 이 과정에 왜곡이 생겼다.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자 그녀의 뇌는 한쪽 눈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 결과 사물이 2차원으로 보이는 ‘입체맹’이 됐다. 그리고 특수안경과 시력 훈련으로 마흔여덟 살에 처음으로 세상을 입체로 보기 시작했다. ‘입체맹은 특정 시기가 지나면 극복할 수 없다’는 의학계 정설을 뒤집은 기적이었다.

최근 국내 출간된 <디어 올리버>는 배리가 ‘의학계의 시인’ 올리버 색스에게 자신의 기적 같은 변화를 전하면서 시작된 우정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색스는 저명한 뇌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독특한 신경학적 문제를 겪는 환자들의 사연을 따스하게 적어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이름을 알렸다.

입체맹을 극복한 배리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을 기록해 색스에게 보냈다. 그러면 자신의 변화를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두 사람의 편지들이 담겨 있다. 동료 신경과학자이기도 한 이들은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10년간 15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책은 편지를 바탕으로 배리의 해설을 더했다. 두 사람의 편지는 일상과 연구를 넘나든다. 인간뿐 아니라 오징어 등 다른 생물이 사물을 보고 인지하는 과정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 배리는 입체맹을 극복하기 전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세상은 납작해 보였습니다. (…) 입체시가 생긴 지금은 제가 세상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빈 공간이 보이고, 손에 만져질 듯 뚜렷하게, 한층 생생하게 느껴져요!”

색스의 첫 답장에는 학자로서 그의 흥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뉴욕입체협회 정회원이던 색스는 배리의 이야기에 사로잡혔고, 배리의 사례를 ‘스테레오 수’라는 글로 써서 ‘뉴요커’에 발표했다. 배리는 일약 유명 인사가 됐고 <3차원의 기적>이라는 책을 집필해 출간했다.

책은 색스가 배리에게 쓴 담담한 마지막 편지로 끝을 맺는다. “그간 교수님과 나눈 깊고 고무적인 우정은 지난 10년간 제 삶에 추가로 주어진 뜻밖의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편지를 보내고 3주 뒤 그는 세상을 떠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