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가사 부르고 싶어요"…'케데헌' 해외서 대박나더니 [무비인사이드]

입력 2025-08-25 09:55
수정 2025-08-25 10:48
넷플릭스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올여름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세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문화 현상, '신드롬'급 인기다.

6월 20일 공개된 이 영화는 공개 직후부터 글로벌 시청 순위 상위권을 점령하더니 현재 누적 시청 수 1억8460만 건을 기록했다. 이는 넷플릭스 영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상영 시간이 1시간 40분인 점을 감안할 때 누적 시청 시간은 3억760만 시간에 달한다. 1위인 '레드 노티스'(2억3090만 건)을 쫓고 있는 이 기록은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소니픽처스를 통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케데헌'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다. 리뷰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5000명 이상이 남긴 관객 평점은 91점에 이른다. 작품 속의 OST는 영화의 성공에 힘을 싣는다. OST 수록곡 가운데 무려 8곡이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에 동시 진입했고 '골든'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타임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을 심층 소개했다. CNN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여름을 강타했다"며 "케이팝이 대중문화를 정복한 방식을 설명할 또 다른 기회"라고 평가했다. 골드더비는 이날 "네(Yes),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타당한 오스카 경쟁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영화가 최고 권위의 오스카(아카데미)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케이팝 걸그룹이 밤이 되면 악마 사냥꾼으로 변신해 세계를 위협하는 초자연적 존재와 맞선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아동용 판타지로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장르적 실험과 문화적 디테일에서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았다. 코미디·액션·음악·호러가 한데 어우러지며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면서 이야기에 깊게 몰입하게 한다.

'케데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적 디테일'이다. 영화 곳곳에는 한복, 부채, 호랑이, 저승사자 같은 한국 문화의 상징들이 정교하게 배치돼 있다. K팝 무대의 화려함과 이질감 없이 '믹싱'된 점은 해외 관객에게는 새롭고도 매혹적인 비주얼로 다가간 것으로 분석된다.

연출을 맡은 매기 강 감독은 "틀린 아시아 판타지가 아니라 진짜 한국 문화를 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 팀원들의 조언을 받아 세세한 오류까지 걸러냈다고 덧붙였다.

'케데헌'은 처음엔 어린이 관객이 흥행을 주도했지만, 부모 세대까지 입소문을 타고 합류하면서 이 작품은 세대를 초월하는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시대에 개인적 시청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케데헌'은 오히려 집단적 경험과 커뮤니티적 유대를 자극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확보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케데헌' 최대 수혜자는 한국? K푸드·K관광으로 확산
구글 검색 트렌드에 따르면 8월 17∼23일 기준 전 세계에서 '한국'(Korea) 검색량은 2022년 말 이후 2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지난해 12월 직후보다도 높았다. 당시 수치가 99였다면, 이번 주는 100으로 정점을 찍은 것이다.

특히 '한국 음식'(Korean Food) 검색량은 '케데헌' 공개 이후 75% 급증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 소비를 넘어, 한국의 음식과 생활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호기심이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이 기세를 이어가며 북미와 유럽,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싱어롱 이벤트를 개최했다. 북미에서만 1700개 극장이 참여했고, 이미 1000회 분량이 매진됐다. 버라이어티는 '케데헌'이 23∼24일 주말 동안 북미 극장가에서 1800달러∼2000달러(약 280억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됐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싱어롱 이벤트는 단순한 상영회가 아니다. 아이들이 OST를 따라 부르던 집 안 풍경이 이제는 극장 안 수백 명의 합창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SNS에는 "온종일 OST를 듣던 아이 덕에 결국 부모까지 떼창에 합류했다"는 후기가 넘쳐난다. 글로벌 커뮤니티 레딧에는 "'케데헌' 한국어 가사 발음 가이드"라는 게시글이 등장해, 해외 팬들이 직접 한국어 가사를 익히는 풍경까지 연출됐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체험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품 속 헌트릭스 멤버들이 컵라면을 먹는 장면은 한국 브랜드와 유사한 오마주로 화제가 됐다. 실제로 농심은 '케데헌' 캐릭터를 적용한 신라면, 새우깡 특별판을 출시하며 영화의 인기를 제품 마케팅과 연결했다.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 테마를 무료 배포하며 전 세계 팬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예 홍보 콘텐츠에 '케데헌' 캐릭터를 활용해 국제회의를 알렸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케데헌'으로 대표되는 한국 소프트파워 확산이 국내 화장품·음식료·엔터테인먼트 종목 주가의 리레이팅(재평가)을 촉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나정환 연구원은 "한류 콘텐츠는 단순 문화 소비를 넘어 관광, 화장품, 길거리 음식 체험으로 연결된다"며 긍정적인 소비 파급 효과를 강조했다.

흥행의 수혜는 한국 문화계에도 직결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내놓은 뮷즈(뮤지엄 굿즈) '까치 호랑이 배지'는 영화 속 캐릭터 '더피'를 떠올리게 하며 해외 관광객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출시된 이 배지는 지금까지 7만 개 이상 팔렸고, 지난달에만 3만8000여 개가 판매됐다. 연일 품절 사태가 이어지면서, 영화 속 문화 코드가 실제 상품 소비와 관광으로 연결되는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최근 내한한 매기 강 감독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유홍준 관장을 만났다. 유 관장은 "나는 '케데헌' 피해자"라며 "(나 때문에) 박물관이 커졌다 해야 하는데 '케데헌' 때문에 커졌다 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농담을 던졌다. 매기 강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며 "관장님의 설명을 듣고 하나하나 디테일을 알게 돼 새롭게 보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매기 강 감독은 "진짜 한국을 보여주려고 했고, 그것이 글로벌한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케데헌' 스토리를 100% 전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후속작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트로트, 헤비메탈, 판소리 등 한국의 음악 장르를 거론하며 영화에 녹여내고 싶다고 귀띔했다. 후속편이 현실화된다면, '케데헌' 신드롬은 단순한 일시적 흥행이 아니라 장기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